Page 172 - 고경 - 2024년 1월호 Vol.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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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본격적으로 선 자체만을 일본에 전한 사람은 중국 승
          려인 의공이다. 진언종의 조사 쿠카이空海가 중국 유학에서 귀국, 황태후에

          게 중국 선사를 모시기를 청하여 에가쿠恵萼가 파견되어 847년 도일이 이뤄

          졌다. 당시 회창의 법난으로 승려의 거취가 어렵게 된 이유도 있었다. 그는
          마조도일의 제자로 제안齊安 국사의 제자다. 진언종의 근본도량인 교토 동
          사東寺의 서원書院에 있다가 새롭게 건립한 단림사檀林寺에서 선을 전했다.

          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계율 파괴의 현실에 실망하여 7년 뒤에 귀국해

          버렸다. 후일 에가쿠가 중국에 가서 그 사적을 기록한 「일본국수전선종기日
          本國首傳禪宗記」라는 비문을 받아와 교토의 나성문羅城門 옆에 세웠다.



            가쿠아覺阿와 임제종



           순수선에 대한 수학 의지는 가쿠아가 나올 때까지 세월을 기다릴 수밖
          에 없었다. 그는 1171년 입송하여 원오극근의 제자인 항주 영은사寧隱寺의

          불해혜원佛海慧遠의 지도를 받았다. 『원형석서』에는 가쿠아의 깨달음에 대

          해 다음과 같이 전한다. 그는 혜원에게 “선사께서 덕이 높고 의리에 밝으
          시다는 말을 바람결에 듣고서 감히 이 방장을 찾아왔으니, 아무쪼록 심
          인心印을 전해 주시어 어리석은 중생을 제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또 마

          음과 부처와 중생, 이 셋은 차별이 없다고 하고 또 형상을 떠나고 언어를

          여윈다고는 하지만 말을 빌려서 요체를 보여 주십시오.”라며 가르침을 청
          했다. 혜원은 “중생들은 허망한 견해를 짓나니, 부처를 보고 세계를 보는
          도다.”라고 했다.

           가쿠아는 글로써 “무명은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깁니까?”라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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