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 - 고경 - 2024년 1월호 Vol.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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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겨울 백련암 고심원의 모습.

          소납이 출가해서 20여 년 큰스님을 모시고 살면서도 장경각에 어떤 책들

          이 있는지 제대로 설명을 들은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기억입니다.
           출가해서 한 15년쯤 지났을 때인가 봅니다. 그 시절부터는 어쩌다 한 번
          씩 열쇠를 건네주시며 “어디 어디에 있는 책장 몇 단의 앞에서 열두 번째

          책을 가져오너라.”는 식으로 책 심부름을 시키셨는데, 그 위치를 기억하기

          위해 몇 번이고 입으로 되뇌고 되뇌이면서 장경각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책장 앞에만 서면 큰스님께서 말씀하신 몇 단 몇째 줄에 대한 기억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서 기억의 끝단을 잡고 어렵사리 책을 찾아 올리면 그중

          서너 번은 대체로 불호령이 떨어지곤 했습니다. 그때도 큰스님께서는 책

          이름은 말씀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또 얼마간의 세월이 흘러 하루는 큰스님께서 “내 나이가 이제 팔
          십이 되어 가니 책을 보관하는 저 나무 궤짝의 문틀이 이리저리 틀어져 문

          을 열기가 힘들다. 그러니 장경각을 새로 짓되 개가식으로 만들어 마음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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