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 - 고경 - 2024년 1월호 Vol.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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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문화재청의 지원을 받아 30여 평의 새로운 장경각을 짓기 시작하
여 2023년 11월에는 단청까지 마무리하였습니다. 2024년 6월까지 항온·
항습 장치까지 완비하면 고심원 1층에 있는 고서들 가운데 중요한 서책들
을 새 장경각으로 이운할 예정입니다.
되살아나는 초보스님 시절의 에피소드
이렇게 장경각 건물이 새로 들어서고 보니 백련암 가람의 전체 배치가
뜻하지 않게 정리되었습니다. 적광전에서 시작하여 관음전, 천태전, 영자전,
고심원, 좌선실, 원통전, 장경각, 정념당으로 흐르는 건축선이 백련암의 위
엄을 충분히 살려주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소납은 단청을 마친 장경각을 들
러보며 ‘백련암으로 출가하여 50여 년을 살면서 장경각이 이렇게 우뚝 선 걸
보니 이제 마음이 놓이네’ 하며 혼자 슬며시 미소를 지었습니다. 또 한편 장
경각을 이 자리에 짓고 보니 소납으로서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되살아나
는 곳이기도 합니다.
출가하여 행자 시절과 초보스님 시절을 보낼 때입니다. 겨울 지나 삼월
이 오면 나무들에 물이 오르기 전에 ‘물구리’라고 하는 가는 나무들을 꺾어
아궁이의 불쏘시개를 만들려고 산으로 나섭니다. 물구리는 절에서 쓰는 말
인데, 갓난아기 팔뚝 굵기만 한 나뭇가지를 일컫습니다. 보통 50단쯤 부엌
근처에 쌓아 두고 봄부터 가을까지 사용합니다. 절 근처에는 그런 나무가
없으니 산에 올라 골짜기를 다니며 물구리를 찾아 한 짐씩 지고 오는 울력
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도시에만 살다가 온 저에게는 농촌 일 모든 것이 서
툴러서 주위의 스님들에게 핀잔도 다반사로 듣고 지내던 때였습니다. 그
날도 단단히 주의를 듣고 지게를 지고 산을 올랐습니다. 산을 다 올라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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