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6 - 고경 - 2024년 5월호 Vol.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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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에 대한
‘눈치 보기’도 작용하고 있지만
또 다른 일설에는 내부적으로는
겔룩종파의 견제 때문이라고도
전한다. 4)
과거 시킴 왕국과 티베트는 오
래전부터 깊은 연결고리가 맺어
사진 5. 제16대 까르마빠 & 제17대 까르마빠 프로필 져 있어서 까규종파는 겔룩빠 대
대조.
신 시킴왕국의 사실상 국교노릇
을 해왔을 정도이다. 그 시작은 18세기 당시 시킴왕국의 4대 쇼갈 지룸드
왕이 성지순례를 떠나면서부터다. 그는 출푸사원에서 제13대 까르마빠를
만나서 큰 감화를 받고 이후 시킴에 티베트 불교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5)
이후로 제9대 까르마빠 왕축 도르제 때 시킴의 국왕이 그의 명성을 듣고
시킴 방문을 요청했으나 여건이 되지 못했다. 그러자 자신을 대신할 고승
한 명을 보내 시킴 지역에 3개의 사원을 건립하였다. 물론 그 가운데 하나
가 바로 룸텍사원이었다.
3번째 연결고리로는 근대 중국의 티베트 침공으로 인해 1959년 제16대
까르마빠가 라싸를 탈출하여 룸텍에 도착했다. 그러나 당시 룸텍은 거의
4) 현재 그의 상황은 우리들로 하여금 석연치 않은 느낌을 받게 만든다. 그는 무려 20년 동안 인도당국으
로부터 난민의 자격을 인정받지 못하고 더구나 거처할 사원도 없이 규또(Gyuto Mon) 사원이란 겔룩빠
사원에서 얹혀 지내고 있다가 2002년에야 겨우 난민 자격을 부여받았지만 여전히 룸텍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처지이다.
5) 평민 복장을 한 이 순례자를 보는 순간 까르마빠는 극진히 대우했기에 지룸드왕은 결국 자신의 신분
을 밝히고 시킴으로 돌아가면 까규빠의 사원을 세우겠다고 약속한다. 이에 까르마빠는 허공에 곡식 낱
알을 뿌리며 왕을 축복했는데 그 곡식들은 시킴으로 날아와 시킴 남중부의 작은 마을 라방라에서 6km
떨어진 라롱이라는 지역에 떨어졌고 이때 하늘에는 무지개가 떴다고 한다. 지룸드왕은 까르마빠와의
약속을 지켜 낱알이 떨어진 라롱 외에도 까규파 사원을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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