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2 - 고경 - 2024년 8월호 Vol.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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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수립했다. 『정법안장』 60권을 편집하여 수행의 핵심 텍스트로 활용하
          며 도겐의 사상을 보다 깊이 있게 발전시키기도 했다. 임제종 우위의 풍조
          속에서 자파의 정체성 유지에 기운이 고민한 흔적을 역력히 볼 수 있다.

           조동종이 독자성을 유지, 발전하면서 기카이와 기엔 중 누군가를 영평

          사 3대로 할 것인가에 대한 제자들의 논쟁은 막을 내렸다. 보수파와 개혁
          파의 대립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삼대상론을 거치면서 기카이가 대승사로 옮
          긴 후 제자들도 따라오면서 비로소 교단의 분열이 현실화되었다. 도겐의

          법손은 후쿠이현의 영평사와 이시카와현의 대승사로 나눠지게 되었다. 마

          침내 대승사의 2대 주지인 케이잔 조킨瑩山紹瑾이 나와 조동종의 전국적인
          부흥이 이뤄지게 되었다. 1321년 이시카와현의 율사 조켄定賢은 자신이 주
          지로 있는 제옥관음당諸嶽觀音堂을 조킨에게 기증했다. 이곳이 바로 영평사

          와 더불어 양대 본산인 총지사(總持寺, 1911년 가나가와 현으로 이전)가 되었다.

          교단에서는 도겐은 고조로 조킨은 태조로 부르고 있다.
           역사는 앞에서 볼 때 미래를 알 수가 없다. 결과를 놓고 퇴보와 발전을
          언급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때로 논쟁은 새로운 인물을 탄

          생시켜 교단이 도약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무한한 생명력

          을 지닌 불법의 조화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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