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7 - 선림고경총서 - 10 - 오가정종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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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권 운문종 97
이하지 않았다.하루는 스님이 그곳을 찾아가자 곧 수좌로 명하니
스님도 사양하지 않고 소임을 맡았다.
당시 유왕(劉王:劉龑)이 절에 들어올 때마다 영수스님이 맞이
하지 않자 유왕은 그의 허물을 따지려 하였다.영수스님은 그의
마음을 알고 마침내 입적해 버렸는데,유왕이 다시 찾아왔을 때
대중이 이를 알리니 유왕이 말하였다.
“무슨 말씀이 없더냐?”
“ 스님께서 돌아가실 때 함을 하나 봉해 놓고 왕께서 오시거든
직접 열어 보라 하십디다.”
유왕이 함을 열어 작은 서첩을 펼쳐 보니,“인천의 안목은 이
절 수좌이다”라고 씌어 있었으므로 유왕은 스님에게 주지를 잇도
록 명하였다.
전생 인연에 유왕은 향을 파는 장사였는데 절에 들어오면 승
당 안에서 침을 뱉곤 하였다.그때 영수선사는 당사(堂司:유나라
고도 함.승당의 지도와 감독을 맡음)로 있다가 우연히 그를 보고
는 “얼굴에 침을 뱉는 것과 같다”고 꾸짖으니 언쟁이 그치지 않
자 스님은 충고하고 떠났다 한다.
스님에게는 ‘고(顧)!’‘감(鑑)!’이라는 일자로 된 관문[一字關]과
붉은 깃발 아래 해골이 널려 있다[紅旗橫骨]*는 종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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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적하실 때 남긴 글[遺書]에서 말했다.
“17년 동안을 풍상에 시달리며 수천 리 밖에서 남으로 북으로
*운문의 종지에 대해 오조 법연(五祖法演)스님이 평한 말.“붉은 깃발 번뜩이
는데 그 아래는 해골이 널려 있다[紅旗閃爍 橫骨其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