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 - 선림고경총서 - 19 - 설봉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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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봉록 上 17



               설봉어록을 판각하게 된 유래[刻雪峯語錄緣起]


















               나는 20년 전,꿈에서 어느 쓸쓸한 절에 갔다가 설봉조사께서 그
            절 위에 가부좌로 앉아 계시는 것을 보고 오체투지하여 절을 올렸다.
            스님은 나를 보고 웃으시고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수기(授記)내
            리시기를,“부모를 존경하듯 스승과 어른을 존경하라”고 하셨는데,

            나는 마음속으로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지난봄에 여집생(余集生)대거사가 민(閩)땅에 들어갔다가 조사의
            뜨락이 시들어 감을 깊이 슬퍼하고 힘써 정돈하고자 고항(古航)선사
            를 초청하여 그 일을 도맡아보게 하였다.나는 당시 소검진(邵劍津)

            과 함께 지팡이를 짚고 따라 들어갔는데,그 안에 있는 아름다운 상
            (像)과 절 문과 법당을 보니 마치 전에 내가 꿈속에서 본 것같이 황
            홀하였다.그리하여 스승과 제자가 만나는 일은 천고의 시간을 넘어
            서도 통한다는 사실을 환히 알게 되었고,떠돌아다니는 자신을 부끄
            러워하였다.게다가 외람되게도 내가 스님의 부촉을 받았으니 끊임
            없이 법유(法乳)를 주신 지극한 은혜는 갚기 어려운 것이다.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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