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 - 선림고경총서 - 19 - 설봉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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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설봉록


            바다가 뽕밭이 되는 허깨비 같은 변화 속에 가르침의 자취가 점점
            사라져 가니 그것을 늘 탄식할 뿐이었다.
               이에 스님이 남긴 말씀을 찾고자 하였으나 조금 있는 것조차 겨
            우 좀이 먹다가 남은,보잘것없는 한두 장에 지나지 않았다.그러던

            중에 우연히 영탑(靈塔)을 모시고 있는 초진(超塵)스님이 나의 초당을
            지나다가 책 한 질을 꺼내 보였다.너무 기뻐서 세수하고 향을 사른
            다음 읽어보고는 차마 손을 뗄 수가 없었다.다만 착간(錯簡)된 곳이
            많아서 안타까웠다.도로 이 책을 들고 송암(松菴)에 들어가 청림(靑
            林),조원(曹源)두 분 스님과 함께 옛 본을 찾아 자세하게 고증하여
            바로잡기로 하였는데,한 달 만에 비로소 완성되었다.

               이때 마침 석우(石雨:1593~1648)대사가 석장을 날리며 서선사
            (西禪寺)로 들어왔는데 만나자마자 왜 이 책을 판각하지 않느냐고 물
            었다.이에 나는 바로 그날로 이 책을 판에 새기라고 맡겼다.
               기이하구나,대사의 물음이여!나도 모르게 서로 바라보며 웃고는

            이어서 생각해 보았다.스님께서 7백 년 전에 하신 말씀을 내가 7백
            년 뒤에 판각하게 되다니…….유리궁전 안에서 손잡고 함께 걸으니,
            어디든 내 몸 아닌 곳이 없고 언제든 말씀 없는 때가 없어 스님께서
            엄연히 계시는 듯하다.
               만약에 “굵은 자갈이 다 깎이고 수양버들 가지가 하늘을 보고 거
            꾸로 날릴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부처님이 다시 온다”고 한다면,이

            런 사람들은 나와 꿈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숭정(崇禎)기묘년(1639)여름 민중(閩中)의 득산(得山)거사
               임홍연(林弘衍)이 향을 사르고 삼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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