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 - 선림고경총서 - 20 - 현사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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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얻어 한 스님에게 교정을 보게 하여 한 권의 책으로 합하였다.
            비록 완전하진 못하나 십에 칠팔은 되었다.이리하여 현사사(玄沙
            寺)의 스님에게 명하여 판에 새겨 세상에 퍼지게 하였다.

              종일대사사비(宗一大師師備)스님을 살펴보면,복주(福州)민현(閩
            縣)사람으로 속성은 사씨(謝氏)이다.함통(咸通)초에(860)부용산
            (芙蓉山)의통(義通)스님을 따라 홍조대사(弘照大師)를 섬기다가 오

            랜 뒤에 종릉(鐘陵)개원사(開元寺)도현율사(道玄律師)에게 가서
            구족계를 받았다.
              설봉(雪峰)스님이 한번은 “비두타(備頭陀)는 다시 온 사람[再來

            人]이다”라고 하였으며,또 “어째서 제방으로 행각하지 않는가?”라
            고 하였다.이에 스님은 “초조(初祖)도 동토(東土)에 오지 않았고
            이조(二祖)도 서천(西天)으로 가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처

            음에는 현사원(玄沙院)에 안주하였는데,광화(光化)초(898년)에 왕
            심지(王審知)가 청하여 안국사(安國寺)에서 처음으로 산문을 여니
            학인들이 그를 따라와서 항상 칠백여 명이나 되었다.

              혜구(慧球:安國慧球)와 계침(桂琛:羅漢桂琛)은 모두 그의 뛰어
            난 제자다.
              왕심지가 조정에 아뢰어 자색가사와 종일(宗一)이라는 호를 하
            사하였다.

              개평(開平)2년(908)11월에 입멸하시니 나이는 74세였다.



              원풍(元豊)3년(1080)윤월 27일에 서문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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