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91 - 선림고경총서 - 33 - 종용록(중)
P. 191

종용록 中 191


                줄을 고르는 격이요,뱃전에 표를 새겨 칼 잃은 자국을 기록하
                는 격이리라. 보장론(寶藏論) 에 이르되 “대저 전진하고 수행
                하는 연유에는 그 안에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고단한 물고기
                가 물가에 머무르는 것과 둔한 새가 갈대숲에 깃들이는 것 같
                음이 있으니,이 두 가지는 큰 바다를 알지 못하고 우거진 숲
                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수행하는 사람이 작은 길로 나아가

                는 것도 그 이치가 똑같다”하였다.

                   주역(周易)  대장괘(大壯卦)에 이르되 “상육(上六)은 영양[羝
                羊]이 울타리를 들이받은 것 같아서 물러날 수도 나아갈 수도
                없으나 이로움도 어려움도 없으면 길하다”하였다.“남의 집에
                서 밥을 먹고 자기 집의 평상에 누웠다”함은 마치 “관청의 밥
                을 먹고 사사로운 볼일[私駝]을 본다”는 말과 같다.또 이르기
                를 “차가운 입으로 남의 뜨거운 밥을 먹을 줄 아는 자를 만나
                기 어렵다”한 것과도 같다.

                  나아가면 구름도 되고 비도 되거니와 들어가면 얼음도 되고
                서리도 되니,이는 들락날락하는 꼴이라 족히 작가(作家)가 될
                수 없다.바로 바늘과 실이 꿰뚫고 솜발이 면밀해야만 베틀의
                올이 멈추지 않고 무늬가 가로 세로에 찬란할 것이다.“석녀가
                베틀을 멈출 바로 그때에 이미 벌써 목인(木人)이 길머리를 바
                꾸었고 밤 기운이 한낮을 향할 바로 그곳에 이미 벌써 달그림
                자는 중천을 향해 옮기고 있다”한 이 마지막의 두 구절은 다

                만 한 구절일 뿐이니,요즘 유가(儒家)의 문사들이 말하는 구절
                을 건너뛰는 짝[隔句對]이라는 것이다.만송이 이렇게 분별함
                [離堅合異]은 천동과 만나게 하기 위함이거니와 여러분은 구봉
                을 저버려서도 안 될 것이니라.
   186   187   188   189   190   191   192   193   194   195   1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