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7 - 선림고경총서 - 33 - 종용록(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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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용록 中 187
어느 날 어떤 승이 묻되 “어떤 것이 머리입니까?”하였는데,
만일 도안(道眼)이 밝게 트이지 못했거나 차별지(差別智)가 갖
추어지지 못했다면 머리니,꼬리니,먼저니,나중이니를 따지더
라도 마음이 어리둥절해서 대답할 길을 알지 못했을 것이나,
구봉은 이르되 “눈은 떴으되 새벽을 느끼지 못하느니라”한 것
이다.
어떤 승이 묻되 “사람마다 모두가 말하기를 ‘법을 청한다[請
益]’하는데 스님께서는 무슨 법을 가지고 제도하십니까?”하
니,구봉이 대답하되 “그대는 큰 산봉우리에 한 줌의 흙이 부
족했던 적이 있다고 여기느냐?”하였다.승이 다시 이르되 “그
렇다면 사해에 참문하러 다니는 이들은 무엇을 위해서입니까?”
하니,구봉이 이르되 “연야달다가 머리를 잃었다고 한 것은 마
음이 스스로 미쳤기 때문인 것과 같으니라”하였다.승이 다시
묻되 “미치지 않은 이도 있습니까?”하니,구봉이 대답하되 “있
느니라”하였다.승이 다시 묻되 “누가 미치지 않은 자입니까?”
하니,구봉이 이르되 “첫새벽에 길을 나선 이는 눈이 잘 뜨이
지 않느니라”하였는데,이것이 곧 눈을 뜨고도 새벽을 느끼지
못하는 본보기다.
승이 다시 묻되 “어떤 것이 꼬리입니까?”하니,구봉이 이르
되 “만 년의 평상에 앉지 않느니라”하였다.또 어떤 승이 묻
되 “어떤 것이 연등불 이전의 일입니까?”하니,구봉이 이르되
“애를 쓰고도 힘을 얻지 못하는 것이니라”하였다.승이 다시
묻되 “어떤 것이 현재의 연등불입니까?”하니,구봉이 대답하
되 “머리는 크고 꼬리는 작은 것이니라”하였다.승이 다시 묻
되 “어떤 것이 연등불의 뒤입니까?”하니,“지위에서 물러나서
도 한가할 줄 모르는 자이니라”하였으니,이것이 만년의 평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