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92 - 퇴옹학보 제1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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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 • 『퇴옹학보』 제17집



            Ⅰ. 들어가는 말

            - 왜 양명과 퇴옹인가? -




               이 논문은 중국 명대의 사상가로, 흔히 심학(心學)을 대성한 학자로

            불리는 양명(陽明) 왕수인(王守仁. 양명(陽明)은 호. 1472-1528)(이하 양명)과
            해방 이후 해인총림 초대 방장과 조계종 제7대 종정 등을 역임한 퇴옹

            성철(1912-1993, 속명은 이영주(李英柱), 호는 퇴옹(退翁), 법명은 성철(性徹). 이하
            퇴옹)이라는 두 인물(여기서는 편의상 ‘사상가’로 칭함)의 심성론·수행론을 비

            교한 시론(試論)이다. 특히 이 논문에서는 ‘퇴옹의 양명학 논의’를 단서

            로 하여 비교론적으로 서술하였다.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본 논문에서 양명과 퇴옹을 비교하여 논의

            하는 이유와 그 의의에 대해서 밝혀두고자 한다.
               먼저, ‘왜 양명과 퇴옹을 비교하는가?’를 말해두고자 한다. 지역적으

            로는 물론 시기적으로도 두 사상가는 다른 시기에 태어나 살다 갔다.

            양명은 명나라 중엽에, 퇴옹은 왕양명 사후 380여 년 뒤의 일제강점기
            인 근대기에 태어났다. 이처럼 두 사상가는 지역과 시대를 달리하는 인

            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인물에게는 공통되는 것이 있다. 이른바

            돈오(頓悟)와 점수(漸修) 관련 논의이다. 즉 왕양명 생존시에 전덕홍[錢德
            洪. 1496-1574, 호는 緖山.  본명은 관(寬), 자는 덕홍(德洪). 일반적으로 자를 많이

            씀]과 왕기[王畿. 1498-1583, 자는 여중(汝中), 호는 용계(龍溪)] 사이에 벌어

            진 ‘사구교’(四句敎) - 사언교(四言敎)라 하기도 함 - 를 둘러싼 논쟁’(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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