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2 - 퇴옹학보 제1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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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 『퇴옹학보』 제18집




            반영한 결과물일 수 있고 그래야 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중국불교는

            외래 사상이 새롭게 정착한 곳의 자가 발전이기도 하다. 자가 발전이 없
            다면 그것은 사상의 맹종일 수 있다. 이 점에서 승조와 길장의 사상은

            중국에서 더 이상 이어지지 못하고 실체 위주의 중국불교가 계속 이어

            졌을 것이다. 즉 無實體의 空은 중국 문화와 어울리지 않아 도생의 열반
            학이 흥성하고 中觀學은 구마라집과 승조 사후에, 그들을 이어받은 길

            장 사후에 점점 그 영향력을 상실한다             204) 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철 사상이 중국의 실체론적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그 사
            상에 대한 해석이며 이 해석이 가치의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것과는 별

            개이다. 인도에서 생겨난 중도관을 중국에 맞게 수용하여 발전시키고,
            한국에서는 우리에 맞게 활용하여 우리에게 도움을 주며 이렇게 다양

            하게 전개되고 발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 성철은 바로 이 이유 때문

            에 그 가치를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성철의 역할
            이 뚜렷한 것이라면 한국인들이 그 가치를 인정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는 두 가지 모두를 버리면서도 두 가지를 동시에 추구하는 이중성의
            般若空보다 하나에 집중하는 實體적 명확성의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므로 佛家는 출가하여 해탈을 추구하는 실천으로, 방외에 서서 방

            내에 도전하는 혜원의 실천이 장안의 승조보다 더욱 불교적                      205) 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한국 역시 중국과 마찬가지로 특히 조선시대 성리학의

            理를 중심으로 실체적 사유에 강하게 노출되어 온 역사적 상황이기에,




            204) 羅因(2003), 360, 376.
            205) 楣山雄一(1955),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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