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9 - 퇴옹학보 제1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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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법장의 교판론과 퇴옹성철의 불교관 비교 연구 • 159





               지적되었던 근대불교학에 대한 섭렵과 그에 대한 반응 역시 이 내적 인

               식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백일법문’을 기준으로 말한다면,
               퇴옹은 불교 내적 정체성을 경절문의 활구에서 찾고 있다.

                 그 이유는 자명하다. “과거·현재·미래 삼세의 모든 부처님과 역대의

               조사(祖師) 모두가 자기 마음을 깨쳐서 성불했지, 언어와 문자에 의지해
               서 도를 얻은 사람은 단 한 분도 없다”는 불교전통에 대한 인식 자체가

               경절문의 전통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화엄교학에 기반한 중도

               의 인식과 일이관지 역시 동일한 선상에 있다. 경절문의 전통에 대한 이
               론적 기반을 제공하는 것이 화엄교학에서 가장 잘 해명하고 있는 중도

               의 이론체계로서 ‘진여법계연기’이기 때문이다. 거칠게 표현하면 선의
               이론적 기반으로서 화엄교학을 원용하여 해명하는 진여법계의 중도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백일법문은 그 수미(首尾)에 퇴옹이 지향하는 불교관을 강렬하게 드
               러내고 있지만, 더 많은 부분이 ‘불교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해설

               의 관점에도 크게 할애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 같은 부분은 퇴옹의 관
               점에서 보면, 불교전통이 약화되었던 시대적 상황에 대한 고려, 그리고

               새롭게 등장한 근대불교학에 대한 대응, 다종교시대에 있어서 불교의

               사회적 역할 등에 대한 고민까지 일정 부분 담보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것이, 불교전통을 기반으로 하는 승가와 불자 교육에 있어서 기본적

               관점이 미비했던 현실에 대한 선사의 응병여약으로서 ‘백일법문’을 위치

               지우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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