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5 - 퇴옹학보 제1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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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법장의 교판론과 퇴옹성철의 불교관 비교 연구 • 155
사실은 여기에 이미 ‘중도’라는 기준에 의한 교판이 세워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중도는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진여법계연기’라고 지칭
된 화엄교의 관점에 의거해서 재구성된 것이다. 물론 퇴옹의 해석에 의
한 관점이다. 화엄의 중도를 교가의 최고봉이라고 지칭한다고 해서, 화
엄교를 최상승에 놓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불교사의 전 사상에 그대로
적용하여 융통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퇴옹이 다양한 불교사
상들 혹은 이론체계들을 ‘중도’라는 하나의 관점에 융통시킨 이유는 무
엇일까?
다양한 논의가 가능한 지점이다. 안목을 어디에 두느냐가 문제가 되
는데, 논자는 가장 중시해야 할 부분이 퇴옹 스스로 입각하고 있었던
불교전통 곧 정체성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불교전통이 처해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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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 시대상황이 또 다른 중요한 외연이 될 것이다. 그러면 퇴옹 스스로
가 입각하고 있었던 불교전통 곧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두말 할 것도 없
이 선종 특히 임제종의 법통을 강조하는 본분종사로서의 입지일 것이
33)
다. 돈오돈수론에 입각한 전통인식 은 퇴옹의 그러한 정체성을 확연하
게 드러낸다.
퇴옹의 그러한 정체성 인식은 개정증보판 『백일법문』이 상당법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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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되고 있는 구성을 통해서도 분명하게 제시되고 있다. ‘백일법문’
32) 퇴옹의 시대인식, 특히 근대불교학에 대한 대응과 관련해서는 서재영(2002), 서재영
(2005), 조명제(2006), 최원섭(2015)의 논의 등이 있다.
33) 석길암(2005), pp.135-173 참조.
34) 개정증보판의 <시작의 말> 부분과 제1장을 조주선사의 말로 시작하고 있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는 최원섭(2015), pp.40-41에서 이미 지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