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73 - 퇴옹학보 제1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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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개교50년지(朝鮮開敎五十年誌)』 번역 • 273
편집자로서 매우 무리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생각하고 또 결심했다.
8월 10일 지나서 각 지역의 선배와 지인으로부터 힌트를 얻고 조사
를 반복하여 드디어 어느 정도 개념을 완성하였다. 9월 중순 무렵까지
제본 완성을 하지 않으면 10월 1일 기일에 맞추지 못한다.
어찌 되었든 모은 자료만이라도 정리를 하면서 서둘러 집필을 해나갔
다. 먼저 쓴 분량부터 인쇄하고 원고를 계속 적어나가면서 수정을 하고
또 하고 집필 상황이 마치 원고지옥이었다. 이러한 까닭에 완성된 글이
성에 차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원고는 미완성 그 자체다. 다른 날을
기약하여 이를 토대로 보완하여 완성된 형태로 출간하고 싶었다. 특히
제3편은 가장 세밀한 조사를 필요로 하는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할 수 없었던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지금부터 나는 또 [조사를 위
해] 여행을 가지 않으며 안된다.
드디어 2일 한밤중 무리해서 완성하였는데, 전체적으로 교정할 수 없
었던 것을 절친한 친구인 이와미 마모루(岩見護)兄이 이어받았던 것은 다
행스러운 일로 깊은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마지막으로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주시고 편의를 봐주신 분들의 이
름을 여기에 기록하고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淨曉院殿, 和田圓什氏, 太田祐慶氏, 和田康道氏, 井波潛彰氏, 龍山嚴
雄氏, 本山侍董寮石川了整氏, 葭濱忠太郞氏, 橘圓壽氏, 藏品氏, 板倉甚七
氏, 朝鮮總督府官房秘書課, 大谷大學園書館長崎阿彌也氏, 木下萬溪氏,
土井信曉氏, 재조선 각 포교소 주임, 和田常一氏, 高德寺奧村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