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1 - 고경 - 2016년 7월호 Vol. 39
P. 41

머리가 두 개로 늘어난다면 그로부터 발생하는 번뇌도 두 배  이처럼 서로 대립하고 갈등하고 있는 존재의 실상을 꿰뚫

 로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어 보면 둘이 아니라는 진리를 일깨우는 것이 ‘불이법문(不二
 돌아보면 우리는 각자 서로 다른 개체 같지만 실상은 머리   法門)’이다. 현상적으로 보면 오른쪽과 왼쪽으로 나뉘어져 있
 둘 달린 뱀처럼 하나의 몸을 공유하고 있다. 그 몸은 가정이  지만 그 실상을 보면 오른쪽도 왼쪽도 모두 하나의 몸으로 연
 나 국가일 수도 있고, 환경이나 지구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결되어 있다. 오른쪽이 잘되면 왼쪽이 잘되고, 왼쪽이 변을
 우리들은 머리 둘 달린 뱀처럼 나와 너로 분열되어 갈등하고   당하면 오른쪽도 변을 당하는 것이 불이법문이다.

 싸운다. 오른쪽과 왼쪽으로 나뉘어 갈등하고, 나와 너를 구  성철 스님은 존재의 중도성에 대해 “둘이면서 하나이고 하
 분하여 대립하고,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여 논쟁하고, 진보와   나이면서 둘이며, 같으면서 다르고 다르면서 같은, 참으로 원
 보수로 갈라져서 충돌한다. 부처님은 양두사의 비유를 통해   융무애한 도리”라고 했다. 오른쪽 머리와 왼쪽 머리는 하나의

 우리는 모두가 한 몸인 사실을 망각하고 나와 너로 갈라져   몸통으로 연결되어 있음으로 전체로서 그것은 분명 하나이
 싸우고, 그것 때문에 함께 몰락하는 중생의 변견을 설명하고   다. 하지만 오른쪽 머리는 오른쪽 머리대로 있고, 왼쪽 머리는
 있다.      또 왼쪽대로 있기 때문에 둘로 존재한다. 두 개의 머리는 하
 비록 머리는 둘이지만 몸은 하나이기에 오른쪽이 이로우  나의 몸을 공유하고 있음으로 서로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면 왼쪽도 이로운 것이고, 왼쪽이 이로우면 오른쪽도 이로운   오른쪽과 왼쪽은 서로 경쟁하고 갈등하고 있음으로 그 두 머

 것이다. 반대로 왼쪽이 손해를 보면 오른쪽도 손해를 보고,   리는 또 각각 다른 머리이기도 하다.
 오른쪽이 손해를 보면 왼쪽도 손해를 보는 것이다. 이런 관계  존재의 중도성이란 뱀의 두 머리와 같이 서로 같으면서 또
 를 천태 대사는 ‘차조동시 (遮照同時)’라고 했다. 막음과 비춤  다르고, 서로 다르면서도 또 같은 이치를 담고 있다. 따라서

 이 동시적이라는 것이다. 오른쪽 머리가 먹이를 먹는 것이나   중도를 바로 이해하는 첫 번째 방법은 우리가 하나의 몸을
 왼쪽 머리가 먹이를 양보하는 것이나 몸의 관점에서 보면 같  공유하고 있는 ‘같은[一]’ 존재임을 아는 것이다. 그렇게 바라
 은 것이다. 두 개의 머리가 상징하는 양변에서 보면 득을 보  볼 때 내가 좀 손해 봐도 전체적으로 이로운 것이라면 수용
 는 자가 있고, 손해를 보는 자가 있지만 그들이 근거해 있는   할 수 있는 관용이 생겨난다. 네가 이로운 것이 곧 몸으로 대
 근본, 즉 몸의 관점에서 보면 이익과 손해는 무의미해진다. 네  변되는 전체가 이로운 것이고, 그것은 결국 나에게 득이 됨을

 가 잘되는 것이 곧 내가 잘되는 것이고, 내가 불행해지는 것  알기 때문이다.
 이 곧 네가 불행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단, 이런 논리로 먹이는 늘 오른쪽이 먹어야 하고, 왼쪽은



 38  고경   2016. 07.                                         39
   36   37   38   39   40   41   42   43   44   45   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