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4 - 고경 - 2016년 7월호 Vol.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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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키는 것이다. 네 가지 밥 가운데 첫째는 단식 (段食)으로, 이러한 논의를 보면, 욕계에 사는 우리로서는 살아가는 데 있
우리가 먹고 마시는 전형적인 음식을 가리킨다. 국수 같은 것 어 꼭꼭 씹어 먹는 밥이 필수적이겠지만, 그와 동시에 좋은
을 잘게 씹어 먹는 것처럼, 우리 입에서 조각조각 나뉘어 뱃 의지와 좋은 생각을 통해 우리의 정신을 길러가는 것도 무척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단식’이라고 하였다. 둘째는 촉식 (觸 중요한 일임을 알 수 있다.
食)으로, 감촉을 통해 기쁨을 느껴 몸을 기르는 것을 말한다.
가령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것에 몰두하면 몇 끼 안 ● 『유마경』의 향기 나는 밥
먹어도 배고픈 줄 모르는 것이나, 새들이 알을 따뜻하게 품어 불교의 초기에서부터 내려오던 밥에 대한 사유는 대승의
주어서 그 속의 새끼들이 자랄 수 있게 해주는 것과 같다고 경전에 이르면 보다 다양하게 전개된다. 대표적인 대승 경전
한다. 인 『유마경』에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교화하는 이 사바(娑
셋째는 사식 (思食)으로, 일종의 의지 혹은 생각이라고 할 婆) 세계로부터 42 갠지스 강의 모래 수와 같은 불국토를 지
수 있다. 가령 거북이는 뭍에 올라와 알을 낳은 뒤 바다로 돌 난 뒤 나오는 중향국(衆香國)과 그곳에 계시는 향적(香積) 여
아가 버리지만, 모래 속에 남은 알들은 어미를 생각하며 잊지
않기 때문에 그 알들이 썩지 않고 부화되는 것과 같다고 한
다. 또한 책을 정신의 양식이라고 하는 것처럼, 좋은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이 우리의 정신을 길러주는 밥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넷째는 식식 (識食)인데, 앞의 세 가지 밥을 통해 우리
의 정신 [識]이 유지되어 우리의 목숨이 굳건히 지켜지는 것을
말한다.
더 나아가 불교의 논사들은 이런 네 가지 밥을 삼계 (三界)
나 오취(五趣)에 적용시켜 분류하기도 하였다. 즉 욕심에 매
어 있는 세계인 욕계 (欲界)의 중생들은 위의 네 가지 밥 가운
데 ‘단식’을 위주로 삼는 반면, 욕심을 여읜 세계인 색계 (色界)
의 중생들은 ‘단식’ 대신 나머지 세 가지 밥을 먹으며 살되
‘촉식’을 위주로 삼는 등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밥에 대한 간소함 그 자체였던 성철 스님의 식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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