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 - 고경 - 2017년 5월호 Vol.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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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 동굴 속에서 오랜 세월동안 밀봉 보관되어 왔습니다.                                       말씀을 스리랑카 상좌부 장로스님들이 굳건히 기억하고 기록

           1815년 영국은 스리랑카 싱할라 왕조를 멸망시키고 합병해                                    하였기에 부처님의 올바른 가르침이 세상에 전해질 수 있었다
         버렸습니다. 1848년 7월에 알루비하라 사원이 있는 마탈레에                                    는 그들의 자부심에 고개를 숙여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서 반란이 일어나고, 그 반란을 진압한다는 명목으로 영국군                                        그리고 미얀마나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같은 불교국가에
         이 이 지역을 약탈하기 시작했습니다. 영국군은 마침내 알루                                      서는 아침에 스님들이 줄지어 탁발 나가는 모습이 장관이었
         비하라 사원을 급습하여 사찰을 약탈하였고, 주변에 숨어 있                                      는데 여기 스리랑카는 탁발 나가는 풍습이 없다고 합니다. 그

         는 반란자들을 찾는다면서 사원 주변의 동굴들을 뒤지고 다                                       리고 그들 나라에서는 신도들이 특별한 복장 없이 일상복으
         녔습니다. 동굴을 뒤지다가 발견한 것이 그 동안 세상에 한 번                                    로 절을 드나드는 데 비하여 스리랑카에서는 특히 보살님들
         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인류 최고의 문헌인 빨리어 삼장                                      은 아래위로 꼭 흰 옷을 입고 출입하는 모습이 상당히 엄숙하

         이었습니다. 발견된 빨리어 삼장은 영국 식민정부의 주도로                                       고 청아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주지스님에게 단주나 108염주
         영국 본토로 옮겨지게 되었고, 이 빨리 삼장을 연구할 목적으                                     를 구하려 하니 “스리랑카에서는 그런 불구(佛具)를 전혀 쓰
         로 PTS(Pali Text Society) 학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석                         지 않아서 없다.”고 하여서 무척 당황하였습니다.
         학으로 불리던 리즈 데이비스 박사를 중심으로 1891년부터                                        캔디 불치사에서 특별한 배려로 불치사리를 모신 화려한
         시작되어 50여년에 걸쳐 번역이 진행되었고 마침내 영어판 빨                                                                   불치사리함을 가까이에서

         리어 삼장을 완결할 수 있었습니다.                                                                                 참배하는 뜻 깊은 시간을
           역사적으로 스리랑카는 외침과 반란과 같은 전란이 많았                                                                     가질 수 있어서 모두들 너
         고, 이러한 정치적 상황 속에서 정통 상좌부의 위기가 많았기                                                                   무나 고마워했습니다. 지

         때문에, 그들은 문헌으로 기록하여 깊은 동굴에 경전을 밀봉                                                                    면 관계상 더 이야기를 못
         하여 보존할 수밖에 없었다가 식민시대를 거치면서 항거하는                                                                     하여서 아쉬운 가운데 이
         과정에서 삼장이 1800년 이상이 지난 후 세상에 나오게 된                                                                   번 스리랑카 성지순례는
         것입니다.                                                                                               꼭 옛 고가(古家)를 다녀오
           이러한 역사를 설명 들으면서 저에게는 남방 상좌부 스님들                                                                   는 듯한 푸근한 마음을 느

         의 남전장경, 니까야에 대한 크나큰 자부심을 이해할 수 있는                                                                   낄 수 있어서 너무나 편안
                                                                               스리랑카 국민들의 정신적 귀의처 불치
         실마리를 찾은 듯해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부처님의                                     사 사리함                         했습니다.



         ● 고경                                           2017. 05.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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