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 - 고경 - 2017년 5월호 Vol.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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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 동굴 속에서 오랜 세월동안 밀봉 보관되어 왔습니다.   말씀을 스리랑카 상좌부 장로스님들이 굳건히 기억하고 기록

 1815년 영국은 스리랑카 싱할라 왕조를 멸망시키고 합병해   하였기에 부처님의 올바른 가르침이 세상에 전해질 수 있었다
 버렸습니다. 1848년 7월에 알루비하라 사원이 있는 마탈레에  는 그들의 자부심에 고개를 숙여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서 반란이 일어나고, 그 반란을 진압한다는 명목으로 영국군  그리고 미얀마나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같은 불교국가에
 이 이 지역을 약탈하기 시작했습니다. 영국군은 마침내 알루  서는 아침에 스님들이 줄지어 탁발 나가는 모습이 장관이었
 비하라 사원을 급습하여 사찰을 약탈하였고, 주변에 숨어 있  는데 여기 스리랑카는 탁발 나가는 풍습이 없다고 합니다. 그

 는 반란자들을 찾는다면서 사원 주변의 동굴들을 뒤지고 다  리고 그들 나라에서는 신도들이 특별한 복장 없이 일상복으
 녔습니다. 동굴을 뒤지다가 발견한 것이 그 동안 세상에 한 번  로 절을 드나드는 데 비하여 스리랑카에서는 특히 보살님들
 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인류 최고의 문헌인 빨리어 삼장  은 아래위로 꼭 흰 옷을 입고 출입하는 모습이 상당히 엄숙하

 이었습니다. 발견된 빨리어 삼장은 영국 식민정부의 주도로   고 청아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주지스님에게 단주나 108염주
 영국 본토로 옮겨지게 되었고, 이 빨리 삼장을 연구할 목적으  를 구하려 하니 “스리랑카에서는 그런 불구(佛具)를 전혀 쓰
 로 PTS(Pali Text Society) 학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석  지 않아서 없다.”고 하여서 무척 당황하였습니다.
 학으로 불리던 리즈 데이비스 박사를 중심으로 1891년부터   캔디 불치사에서 특별한 배려로 불치사리를 모신 화려한
 시작되어 50여년에 걸쳐 번역이 진행되었고 마침내 영어판 빨      불치사리함을 가까이에서

 리어 삼장을 완결할 수 있었습니다.                    참배하는 뜻 깊은 시간을
 역사적으로 스리랑카는 외침과 반란과 같은 전란이 많았          가질 수 있어서 모두들 너
 고, 이러한 정치적 상황 속에서 정통 상좌부의 위기가 많았기      무나 고마워했습니다. 지

 때문에, 그들은 문헌으로 기록하여 깊은 동굴에 경전을 밀봉       면 관계상 더 이야기를 못
 하여 보존할 수밖에 없었다가 식민시대를 거치면서 항거하는        하여서 아쉬운 가운데 이
 과정에서 삼장이 1800년 이상이 지난 후 세상에 나오게 된      번 스리랑카 성지순례는
 것입니다.                                  꼭 옛 고가(古家)를 다녀오
 이러한 역사를 설명 들으면서 저에게는 남방 상좌부 스님들        는 듯한 푸근한 마음을 느

 의 남전장경, 니까야에 대한 크나큰 자부심을 이해할 수 있는      낄 수 있어서 너무나 편안
          스리랑카 국민들의 정신적 귀의처 불치
 실마리를 찾은 듯해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부처님의   사 사리함  했습니다.



 ● 고경  2017. 05.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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