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4 - 고경 - 2017년 8월호 Vol.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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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제자인 수보리는 『금강경』에서 “어떻게 하면 아뇩                                     번은 만나야 한다는 게 정설이다. 그렇다면 그 이전 전생에선

         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있습니까?” 하고 묻는다. 이에 독                                     3000×3000으로 900만 번, 그 이전 전생에선 27억 번, 그 이
         립된 자아가 있다는 아상(我相), 나와는 다른 남이 있으니 열                                    전에선 81조 번의 인연이 있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결론적
         심히 이기고 빼앗아야 한다는 인상(人相), 우리는 부처가 아니                                    으로 나는 무한대의 시간 속에서 만나지 않은 사람이 아무도
         라 다들 시시한 중생이니 더럽고 치사하게 살아도 된다는 중                                      없게 되는 셈이다. 무엇이든 되어봤을 것이고 무엇이든 죽여

         생상(衆生相), 목숨에 집착하며 오래 살길 바라는 수자상(壽                                     봤을 것이고 무엇이든 사랑했을 것이다. 지금의 목숨만이 나
         者相)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게 붓다의 대답이다. 더는 올라갈                                     인 줄 알지만, 사실 삼라만상이 나다.
         곳이 없는 깨달음은, 역설적으로 더는 내려갈 곳이 없는 마음                                       절에는 부처님이 있다. 알다시피 실체가 아니라 상징일 뿐
         속에 있다.                                                                이다. 쇳덩어리가 나를 구원할 순 없는 노릇이다. 법당은 부처

                                                                               님의 지혜를 거울삼아 스스로 부처가 되겠다고 다짐하고 오
           제92칙 — ●                                                            는 곳일 뿐이다. 자기의 소중한 보물을 덜컥 내주고 돌아오지
           운문의 한 보배(雲門一寶, 운문일보)                                                말 것.


           운문문언(雲門文偃)이 대중에게 말했다.                                                 제93칙 — ●

           “무한한 시간과 공간을 꿰뚫는 영원 속에 하나의 보물이 있다.                                    노조의 모름(魯祖不會 노조불회)
           그것은 바로 우리의 몸속에 있다(形山, 형산). 그런데 등롱(燈籠)
           을 들고 불전(佛殿)에 갔다가 산문(山門)을 그 등롱 위에 올려놓                                  노조보운(魯祖寶雲)이 남전보원(南泉普願)에게 물었다.

           은 채 돌아왔지.”                                                            “‘마니주(摩尼珠)를 아는 이 없으나 여래장(如來藏) 안에서 친히
                                                                                 거두어 얻을 수 있다’ 하였는데 무엇이 장(藏)입니까?”
           출생의 비밀만큼이나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가 전                                         남전이 말했다.
         생 이야기다. 그리고 전생에 임금이었다거나 독립운동가였다                                         “내가 그대와 소통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니라.”
         거나… 직전의 생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는다는 게 전형적인                                         노조가 다시 물었다.

         패턴이다. 재미를 높이기 위한 장치이겠기에 이해는 한다. 하                                       “그렇다면 소통하지 않는 것은 무엇입니까?”
         지만 현생에 옷깃이라도 스칠 인연이 되려면 전생에서 3000                                       남전이 다시 답했다.



         ● 고경                                           2017. 08.                                                                52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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