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9 - 고경 - 2017년 8월호 Vol.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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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주인공의 삶
고 이자만 꼬박꼬박 바치느라 허리가 휘어지던 때였다. 오랜만
에 내 소식을 다른 친구한테서 전해들은 선배가 밥 한번 먹자
보시, 주기 어려움과 며 찾아왔다. 어머니 상태는 어떠냐, 너 힘들어서 어쩌냐 하는
받기 어려움 안부를 마치고 뭘 먹고 싶으냐고 물었다. 아무 생각 없었다.
선배는 일단 차에 타라며 나를 싣고 어디론가 달려서 근사한
음식점에 도착했다.
글 : 이인혜
종업원이 놓고 간 메뉴. 그것을 펴는 순간 휘둥그레진 내 눈
은 가격이 적힌 오른쪽만 위아래로 열심히 훑어보고 있었다.
선배가 웃으면서, 메뉴 갖고 무얼 그렇게 깊이 연구하느냐, 대
충 보고 맛있는 걸로 고르라 하였다. 나는 결정장애처럼 머뭇
휴가철이다. 거렸고 결국 선배가 알아서 주문했다.
휴가비를 받을 일도 없고 피서를 떠날 일도 없는 잉여생활 그날 어떻게 먹었는지,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는 기억나지
자에게 휴가철은,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찜통 속에서 안빈 않는다. 다만, 카운터에서 이십삼만 얼마를 계산하는 선배를
낙도하기 좋은 시절이다. 올해도 그런가보다 했는데 직장 다니 기다리는 동안 ‘그래, 너 돈 많은 건 알겠는데, 재수 똥이다,
는 친구가 휴가비 탔다면서 봉투를 하나 건넸다. 이 인간아! 동네에서 만 오천 원짜리 먹고 이십만 원 날 줄 것
두툼했다. ‘아이, 뭘 이런 걸…’ 하는 절차는 생략하고 “고마 이지, 하나도 안 고맙다!’ 그때 심정이 이랬던 건 기억한다. 무
워” 하며 얼른 집어넣었다. 헤어진 뒤에 봉투를 열어보고 액 엇보다도 혼자 누워 있을 엄마가 걱정되어 빨리 집에 갈 생각
수만큼 격하게 감동했다. 친구는 기쁘게 주었고 나는 고맙게 뿐이었다. 밥 한 끼 먹자고 보낸 세 시간 반이 아까웠다. 알바
받았다. 받고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은 걸 보면 친구의 공덕이 로 생계를 삼는 사람에게 시간은 곧 돈이기 때문이다.
큰 줄 알겠다. 나는 인격이 미숙한 탓에, 받고도 기분 나쁜 적 호의를 베푼 사람은 진심으로 내가 안타까워서 뭐라도 해
이 있었고 주고도 좋은 소리 못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고 싶었겠지만, 비싼 밥을 사기 전에 내 상황과 심정을 살폈
어야 했다. 받은 사람의 기억에 아직도 남아 걸리적거리는 걸
#밥 한 끼 얻어먹고 기분 잡쳤다 보면 선배가 내게 베푼 것을 깔끔한 보시라고 할 수는 없다.
오래 전 일이다. 대출을 받아서 원금은 갚을 엄두도 못 내 나 또한 선배의 호의를 깨끗하게 받을 능력이 없었다. 밥 한
● 고경 2017. 08. 56 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