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 - 고경 - 2018년 7월호 Vol.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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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론서들은 실제 수행과 관계없이 이루어진 교학적 체계화의 산물로 이
해되어야 한다.
특히 중국불교사에서 구마라집과 현장의 역경은 전환기적 사건임은 분
명하지만 문헌에 기술된 내용이 그대로 실천되었으리라는 전제는 신중하
게 재검토되어야 한다. 앞서 언급한 문헌들 중 상당수가 단지 이론서로서
활용되었는데, 『유가사지론』은 대승불교의 수행도를 밝힌 중요한 문헌이
지만 현장 이후 더 이상 논의되거나 주석서가 나오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
해본다면 현실적 활용은 낮았다고 할 수 있다. 현장의 입멸 후 일어난 불
교훼손의 역사가 불러온 교학적 전통의 급격한 쇠퇴도 부분적으로 그 원
인을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들을 고려해볼 때 문헌학에 기초하
여 구성된 불교사가 실제 불교사와 다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 한 가지 고려해야 할 것은 인도불교사와 중국불교사를 하나의 방향으
로 진행된 연속성의 역사로 이해하는 관점이다. 이 역시 최근의 연구에서 도
전받고 있다. 초기불교, 부파불교, 대승불교가 뒤섞여 들어왔을 때 중국인들
이 그 역사성을 이해할 만큼 충분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았으며 따라서 중국
불교의 해석적 틀이었던 교상판석을 통해 다양한 불교문헌을 중국인들 자신
의 방식에 따라 분류하고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사례는 중국불교가
인도불교사 발전 궤적을 그대로 따르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심지어 교판에 제시된 역사성이 실제 중국불교의 발달과정과 일치하지
않는다. 따라서 중국 선수행의 실제를 논할 때 이 문헌들에 기술된 내용은
조심스럽게 검토되어야 한다. 물론 대승불교 초기부터 뚜렷하게 대승불교
의 특징이 드러난 시기까지 수세기에 이르는 과정에 대한 연구 중에는 아
직도 설명되지 않은 많은 공백이 존재한다. 초기불교의 명상법에서 대승
불교, 선불교에 이르는 선수행방법의 변화를 추적하는 것 역시 만만치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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