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4 - 고경 - 2018년 7월호 Vol.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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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식 이야기 2
유식무경唯識無境에서 ‘유식’의 의미
정은해 | 성균관대 초빙교수·철학
1. 유식무경이란 인식識만 있고 인식 외부의 대상(境)은 없다는 말이다.
이 말이 구체적으로 의미하는 것은 우리가 마음 밖의 대상을 만날 수는 없
고 우리가 만나는 대상은 이미 마음 안에 인식되어 있는 대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럴 경우 삼성(三性. 원성실성, 의타기성, 변계소집성)도 마음 안에 인
식되어 있는 대상이 가질 수 있는 세 가지 존재방식이 된다.
우리가 ‘능동적으로’ 알아차리는 모든 것들은 이미 ‘수동적으로’ 마음에
인식되어 있는 것들이다. 다시 말해 마음이 어떤 대상에 ‘능동적으로’ 주의
를 기울여 말하거나 분별하는 것은 단지 이러한 이미 ‘수동적으로’ 마음에
‘인식’되어 있는 것을 사후적으로 ‘재-인식’(해석적으로 분별)하는 것에 불과
하다는 것이다.
서양의 현상학에서는 이미 수동적으로 어떤 것들을 인식하고 있는 마음
을 선先-반성적 의식(수동적 지각)이라고 부르고, 그렇게 수동적으로 마음
에 인식되어 있는 것들 중의 어떤 것에 마음이 능동적으로 주의를 기울여
알아차리는 것을 반성적 의식(능동적 해석)이라고 부른다. 현상학적 관점에
서 보면, 반성적 의식은 선-반성적 의식을 재-인식할 수 있을 뿐, 선-반
성적 의식에 의해 인식되기 이전의 대상, 이른바 외부 대상[外境]를 ‘직접적
으로’ 인식할 수는 없다. 모든 대상은 ‘간접적으로’ 인식될 수 있을 뿐, ‘직
접적으로’ 인식될 수는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현상학은 반성적 의식을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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