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8 - 고경 - 2018년 7월호 Vol.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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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in이다. 여기서 ‘베부스트’는 ‘알고 있는’과 ‘알려진’을 함께 의미한다. 그
래서 ‘베부스트-자인’은 ‘대상을 알면서-있음’과 ‘대상이 알려진 채로-있
음’을 함께 의미한다. 이런 어원적 의미에 따르면, 의식과 대상은 이미 서
로 만난 채로 머물고 있다. 이렇게 만난 채로 머물러 있음을 현상학에서는
‘지향성’(Intentionalität, 의식은 대상을 지향한 채로 있음)이라는 말이나 ‘어떤 것에
관한 의식’(Bewusstsein von etwas, 의식은 항상 어떤 것에 관한 의식임)이라는 말로
표시한다. ‘베부스트-자인’이란 독일어로 보면, 의식과 대상의 만남이 이
뤄져 있는 영역이 바로 의식이다. 그런데 의식은, 통상 우리가 생각하는 것
과는 달리, 대상을 마주하는 (대상의) 상대자(주관)가 아니라, 대상을 포괄하
고 있는 (대상의) 포괄자이다. 주관과 대상은 모두 의식 안에 함께 있는 것
이다. 다시 말해 의식은 이른바 ‘주관’(견분, 見分)이 아니고, 그래서 ‘대상’(상
분, 相分)의 상대자도 아니다. 의식은 주관과 대상(객관)의 포괄자이고, 주관
과 객관은 다만 의식의 구성요소들이다. 이 구성요소들은 반성적 의식이
선-반성적 의식을 반성할 때에 알려지는 것들이다. 이는 8식八識이 각각
자기 안에 견분과 상분을 갖고 있다고 보는 유식학의 견해와 유사하다. 현
상학은 유식학과 마찬가지로 꽤나 복잡하게 논의를 전개하지만, 그 둘은
논의 주제와 논의 내용에 있어서 매우 유사하다. 특히 현상학의 제1의 진
리가 유식학의 제1의 진리(유식무경)와 상통한다. 이런 까닭에, 현상학은 종
종 현대적 유식학이나 서양적 유식학이라고 불린다.
3. 유식학에서 장식藏識이니, 전7식이니, 종자니, 현행이니, 견분이니,
상분이니 하는 것들은 현상학적 관점에서 보면 모두 반성적 의식에 의해
선-반성적 의식을 반성하고 분석하고 서술함에 의해 얻어진 결과물들일
뿐, 선-반성적 의식을 성립시키기 위해 선행적으로 존재해하는 그 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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