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0 - 고경 - 2018년 7월호 Vol.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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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唯一無二한 이 성교聖敎를 수습역행修習力行하여 무상대법無上大法의 철두철
           미한 수호자 양성을 목표로 한다.”고 다짐하였다.
             이 사진 말고도, 청담 스님과 성철 스님이 함께 찍은 사진은 많이 남아

           있다. 두 분이, 어떤 때에는 향곡스님을 더하여 세 분이, 북한산을 등산하

           며 찍은 사진도 여러 장이고, 서울 뚝섬에서 나룻배를 타고 함께 방생법회
           에서 활짝 웃는 장면도 있다. 1950년대 말에는 대구 파계사 성전암에서 재
           가 수행자들과 함께 한 사진도 있으며, 조선 초 대찰이었다가 폐허가 된 양

           주 회암사를 함께 찾아 나옹과 무학 대사의 자취를 더듬으며 의견을 나누

           는 사진도 있고, 승가대학 설립에 적합한 부지를 찾으러 다녀오는 차 안에
           서 서로 장난을 하며 활짝 웃는 사진도 전해온다.
             병자호란의 슬픈 역사를 간직한 남한산성 수어장대 앞에서 함께 찍은

           사진도 있으며, 두 분이 상좌들(혜성과 천제)을 데리고 서울 중심부에 있는

           종묘宗廟 나들이를 하며 모처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 흔적도 있다.
             오늘날처럼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던 시절이 아닌데,
           두 분이 함께 한 사진이 이처럼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은 겉으로 드러내 “우

           리는 평생 도반 아니오!”라고 말을 하지 않아도 가슴이 통하여 그냥 자연

           스럽게 ‘두 분이 함께 찍혔을’ 것이다.
             두 분의 우정을 보여주는 일화 두 가지만 예로 들어보자. 성철 스님은
           손목시계 대신에 회중시계를 좋아하여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청담 스님

           이 입적한 뒤 어느 때인가부터 그 회중시계를 넣는 주머니가 닳고 닳아

           잘 열리지 않게 되자, “청담 스님이 있었으면 벌써 새 시계 주머니를 갖
           다 주었을 터인데. … 청담 스님이 없으니 시계 주머니가 닳아도 누구 하
           나 신경 쓰는 사람이 없네. ….”라며 청담 스님에 대한 그리움을 에둘러 드

           러낸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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