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6 - 고경 - 2018년 9월호 Vol.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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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지 않고 즐거이 부처를 모시고 싶어 하면 원하는 대로 출가해
도를 구하게 하라.’ 조칙이 내려지자 계율에 신경 쓰지 않는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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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들이 마음대로 행동하지 못하고 엄격하게 지켰다.” (강조는
필자)
석호가 파천황破天荒 같은 조칙을 내린 것은 불도징(232~348)이라는 신
이승神異僧의 교화敎化 때문이다. 젊은 날 출가한 불도징은 “진실로 학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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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써, 경전 수백 만 자를 외우고, 의미 또한 잘 이해했다.” 서역 쿠처(庫
車. 지금의 중국 신강성에 있음. 구마라집의 고향)에서 태어난 그는 310년 전란에
휩싸인 낙양에 도착했다. 불교를 널리 알리기 위해서였다. 신비한 주문에
도 능통하고, 귀신을 부릴 수 있었다. 삼씨로 짠 기름을 연지胭脂와 섞어
손바닥에 바르면 천 리 밖에서 일어난 일도 손바닥과 얼굴이 대면한 것처
럼 환히 알았다. 낙양에 사찰을 건립하고자 했으나 때마침 유요의 군대가
낙양에 침입했기에 절을 세울 수 없었다. 사람들 사이에 숨어 지내며 변화
를 관망했다. 그러다 곽흑략이라는 장군을 통해 후조의 창건자 석륵을 알
게 됐다.
후조가 전조 유요의 군대를 격파하고 이길 것임을 정확히 예측한 불도
징에 감탄한 석륵은 그를 가까이 했다. 석륵은 점차 불교도로 변해 갔다.
자신의 전생을 알고, 죽을 날짜를 예견하며, 발우에서 푸른 연꽃을 피워내
고, 가슴에 난 작은 구멍을 통해 내장을 밖으로 꺼냈다 넣었다 하는 불도
27) [南朝梁]釋慧皎撰·湯用彤校注, 『高僧傳』, 北京:中華書局, 1992, p.352.
28) [南朝梁]釋慧皎撰·湯用彤校注, 『高僧傳』, 北京:中華書局, 1992, p.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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