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7 - 고경 - 2018년 9월호 Vol. 65
P. 67
징에 대한 존경과 두려움이 주된 이유였다. 석륵에 이어 석호 역시 그를 존
경했다. 불도징이 신이新異를 펼친 것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교를 널리 퍼트리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할 필요가
있다. 물론 불도징은 도술과 지혜로 백성들의 고통도 들어주었다. 글자를
모르는 일반 대중에게는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불교를 알렸다.
이런 점에서 그는 참으로 위대한 포교사이자 전도자였다.
신이를 통한 전도傳道를 통해 불도징은 후조의 수도 업鄴을 중심으로 한
화북 지역에 893개의 사찰을 건립했다. 이전에 불교를 접한 적이 없는 여
러 민족들도 불교로 인도했다. 일만 여명의 제자도 길렀다. 한족인 도안·
축법아, 인도 출신인 불조佛調, 소그드(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드) 태생의 수보
리須菩提 등이 그의 제자다. 그래서 “석륵·석호의 지독한 학정과 그릇됨
을, 만약 불도징이 함께 하지 않았다면 그 누구도 감히 말할 수 없었으리
29)
라. 백성들은 날마다 이익과 은혜를 입으면서도 몰랐을 따름” 이라며 “불
30)
교를 성대하게 포교함에 있어 그와 비교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고 불도
징을 높이 평가한 『고승전·권9·축불도징전竺佛圖澄傳』의 기록은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사실 외국에서 중국에 온 출가자들이 처음부터 반야학이나 선법禪法으
로 불교 홍포에 나선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대개 어느 정도 신이적新異
的인 풍도風度를 지니고 있었다.
29) [南朝梁]釋慧皎撰·湯用彤校注, 『高僧傳』, 北京:中華書局, 1992, p.356.
30) [南朝梁]釋慧皎撰·湯用彤校注, 『高僧傳』, 北京:中華書局, 1992, p.356.
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