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7 - 고경 - 2018년 9월호 Vol.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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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중관학파의 의미로 번역되지는 않는다.  전자는 ‘중中’을 나타내는
            ‘마디야Madhya’에서 파생된 말로 ‘중도中道를 논의하는 논서’, ‘중도설’, ‘중
            도를 논의하는 자’라는 의미이고 후자는 ‘중도’를 주장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의 합성어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중관’의 ‘중’은 중도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중도란 무엇인가. 바비베까는 『중관심론』의 주석서인 『사택염』에
            서 ‘중’은 존재와 비존재의 양 극단에서 벗어난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함으
            로써 여기에서 말하는 ‘중’이 초기불교의 중도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 또한

            『반야등론』에 대한 복주를 지은 인도의 논사 아발로끼따브라따(8세기경)는

            그들 자신을 ‘대승중도론자’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1)
              이와 같이 바비베까와 그 이후의 주석가들은 나가르주나의 공사상을 계
            승하는 학파라는 자각이 있으면서도 기본적으로는 『중론』에 나타나는 중

            도설을 지지하는 자들이라는 의식이 강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이

            미 널리 알려져 통용되고 있는 이상 ‘중관’이라는 말을 사용한다고 해도 그
            의미는 ‘중도의 통찰’이 될 것이다. 또한 『중론』의 핵심개념인 이 중도는 초
            기불교에서 말하는 ‘양극단에서 벗어난 중도’에 기반하고 있다.

              ‘양극단에서 벗어난 중도’의 의미는 『중론』의 제목에도 잘 나타나 있다.

            원래의 범어제목을 직역하면 『근본중송Mūlamadhyamakakārikā』이 되는데
            이 또한 근본이 되는 ‘중’, 혹은 ‘중도’에 관해 논의하는 게송이라는 의미이
            기 때문이다. 티벳에서는 반야계 경전들과의 연관성에 주목하여 근본반야








            1)  八力 広喜, 「「中論」と中観派」 『印度学仏教学研究』29 巻 2 号, 1981, pp. 556∼559 ; Jaideva Singh,

             『An Introduction to Madhyamaka Philosophy』, 1976; 桂紹隆 etc., 『空と中觀 』(シリーズ大乗仏教 6),
             東京 : 春秋社, 2012 등 수 많은 논문에서 ‘중관’의 ‘중’은 중도를 의미한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정리하
             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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