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4 - 고경 - 2018년 11월호 Vol.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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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만큼이나 ‘상상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의 고통도,

           심지어 인류 전체의 고통도 인류의 한 성원이 겪는 고통보다 결코 더 클 수

           없다.”[지그문트 바우만·레오니다스 돈스키스, 최호영 옮김, 『도덕적 불감증』(책읽는
           수요일, 2015) p.75] 대단한 통찰, 경이로운 문장입니다. <세계인권선언문>을
           통째로 갖다 대도 이 문장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할 것입니다. 비트겐슈타

           인이 말하는 한 인간은 갑남을녀로 이루어진 추상적 집단의 한 사람이 아

           닙니다. 당장 거리에 나가면 만날 수 있는 ‘갑돌이’ 혹은 ‘갑순이’라는 이름
           을 가진 구체적 인간입니다.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 언니, 동
           생이기도 합니다. 백악관 만찬장에서 와인을 마시는 거물 인사든 전쟁과

           가난에서 생존을 위협받는 한 인간이든, 인류 구성원 모두는 이 문장 속의

           한 사람입니다. 이런 인간 이해를 위해 70억이 넘는 모든 인간을 만날 필
           요는 없습니다. 필요한 건 인간의 실존적 삶에 대한 통찰입니다. 저는 그
           것을 사회적 자산으로서의 상상력이라고 말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있는 것은 명료하게 말하라. 그러나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을 지켜야 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하
           지만 그는 그의 철학적 입장에 비추어 볼 때 말할 수 없는 것에 해당하는
           ‘인권’에 대해 말했고, 정곡을 찔렀습니다. 그는 이 문장에서 인류나 인간

           의 본질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무시로 서로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인류와 한 인간을 맞대 놓음으로서, ‘인권’을, 말할 수 있는 것으
           로 만들었습니다. 저는 그 묘리가 상상력에서 나왔다고 믿습니다. 비유컨
           대 ‘우주를 현미경으로 바라본 것’이라고 말하고 싶기도 합니다.

             상상력의 빈곤이 한 사회(국가)를 얼마나 남루하게 만들 수 있는지는 (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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