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5 - 고경 - 2018년 11월호 Vol.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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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죄스럽지만) ‘세월호’의 비극이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세월호 침몰은 그
자체로 비극이지만, 상상력의 빈곤이 더해져서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어려
운 참극이 되었습니다. 우선 청해진해운은 배를 개조할 때 그 배에 탈 사람
들이 뱃삯과 등가인 비인격적 ‘승객’이 아니라 ‘갑돌이’, ‘갑순이’라는 구체적
인격체라는 사실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영어의 몸이 된 한 사람은,
‘한 아이’가 수첩에다 꼭꼭 눌러 엄마, 아빠, 동생을 기쁘게 해 줄 선물 목록
을 적다가 물속으로 가라앉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하지 못했습니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일이야말로 상상력을 필요로 합니다. 손끝에
가시가 박힌 정도의 아픔조차도 내 손이 아니라면 그대로 느낄 수 없는 것
이 타인의 아픔입니다. 추상적 관념으로는 어림없습니다. 근사치에 가는
정도가 자식의 아픔에 대한 부모의 반응이겠지요. 그것조차도 상상이 필
요합니다. 어디가, 어떻게 아파서, 얼마나 괴로울지, 간절히 기도하듯이
상상해야 합니다. 그래도 미칠까 말까 할 것입니다.
꽤 오래 전에 한 영화 잡지에서, 상상력이 인간의 정신세계를 얼마나 깊
고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지를 일깨워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시간
이 지나도 문득문득 떠오를 만큼 감명 깊은 글이었습니다. 괴테의 어머니
가 꼬마 괴테에게 밤마다 이야기를 들려주어 상상력을 자극한 이야기입니
다. 글 가운데서 괴테 어머니의 회고 부분만 인용해 보겠습니다.
“바람과 불과 물과 땅-나는 이들을 아름다운 공주로 바꾸어 내
어린 아들에게 이야기로 들려주었다. 그러자 자연의 모든 것들
이 훨씬 깊은 의미를 띠기 시작했다. 밤이면 우리는 별들 사이
에 길을 놓았고 위대한 정신을 만나곤 했다.”
(도정일, ‘별들 사이에 길을 놓다’, 씨네21, 20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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