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7 - 고경 - 2018년 11월호 Vol.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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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는 ‘나[我]’란 지수화풍地水火風이라는 사대四大로 구성되어 있다
            고 한다. 그래서 내 속에는 사랑하는 연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온 우주가
            들어 있다. 나와 우주의 이와 같은 일체성에 대해 승조僧肇는 ‘천지여아동

            근天地與我同根 만물여아일체萬物與我一體’라고 했다. ‘하늘과 땅이 나와 더불

            어 한 뿌리이고, 만물이 나와 더불어 한 몸’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내 속에
            네가 있으려면 나는 너 속으로, 너는 나 속으로 들어올 수 있어야한다. 그
            렇게 서로 다른 몸으로 들어가는 것이 ‘이문상입’이다.




              바다·태양·바람 등이 내 안에 있다


              모든 존재를 역용力用의 관점에서 보면 존재들은 각자의 영역이 있지만

            서로 다른 존재 속으로 자유롭게 드나든다. 다른 문으로 드나든다는 것은

            내 속에 너가 있고, 너 속에 내가 있는 것을 뜻한다. 그와 같은 역용을 설
            명하면서 등장한 개념이 유력과 무력이었다. 어떤 상태를 지향하는 힘과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두 힘은 서로 길항拮抗 관계에 있고, 그런 힘의

            작용과 조화에 따라 하나의 존재는 결정된다.

              현재의 상태에서 변화를 추구하는 힘을 유력有力이라 한다면 현 상태를
            유지하려는 힘은 무력無力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땡감의 상태는 가
            을 햇살을 받고 달콤한 홍시로 익고자 하는 힘과 땡감 상태를 유지하려는

            두 힘에 의해 결정된다. 홍시가 되고자 하는 힘은 유력이고, 땡감으로 머

            물고자 하는 힘은 무력이다. 홍시가 되려면 익고자 하는 힘은 작동하고, 땡
            감으로 머물고자 하는 힘은 없어야 한다. 결국 한 알의 홍시는 유력과 무
            력의 조화가 낳은 것임을 알 수 있다. 만약 두 힘이 동시에 작동하는 유력

            이 되면 홍시와 땡감이 동시에 있는 오류가 발생하고, 두 힘이 모두 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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