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2 - 고경 - 2018년 11월호 Vol.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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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눕지 않고 수행했다(장좌불와)’는 일화도 흥미로웠다. 니체를 자주 읽
던 나는 당시 요절한 예술가들만 골라서 좋아했고 초인超人이 되고 싶기도
했다.
어렸을 때는 어른의 고독에 끌렸다. 이제는 그 인내 앞에 부끄럽다.
사리가 노옹의 신비한 몸이었다면 ‘산은 산, 물은 물’이란 법문은 신비
한 말이었다. 고요한 산중의 음어陰語는 강력한 전설과 추모를 발판 삼아
더 넓은 세상에까지 퍼졌다. 모두가 그 의미를 궁금해 했다. 그리곤 이해
하지 못해서 더욱 추앙하거나 이해하지 못해놓고 비난했다. 스님이 같이
데모를 해주지 않는다고 툴툴대던 80년대 학번 대학생들도 개똥철학을 풀
고 싶을 때에는 유행어처럼 썼다. 요즈음의 어느 부동산 관련 인터넷카페
에서는, 주택 입지의 중요성에 관한 선견지명이었다고 평가한다. 이들에
겐 물이 산보다 우위에 있다. 이른바 ‘숲세권’이라봐야 산지의 아파트는 가
격상승에 한계가 있고 한강변 아파트는 영원히 유망하리라는 둥….
내게도 인생은 문제였다. 돈이 아까워서 대학원에 진학하지는 않았으
나 나도 나름 철학을 했을 것이다. 옛날에 낸 어느 책에 “산은 산이어서 아
름답고 물은 물이어서 그윽하다”고 썼다. 성철 스님은 생전에 “불교의 근
본은 중도中道”라며 ‘쌍차쌍조雙遮雙照’를 누누이 강조했다. 양변兩邊을 동시
에 버림으로써 양변을 동시에 비춘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거’ 아니면
‘저거’ 사이에서 선택하거나 비교하거나 방황하거나 후회하다가 종치는
게, 일체중생의 하나같은 세상살이다. 서로의 단점들을 포용하면 장점들
만 드러나는 법이다. 산은 산이어서 좋고 물은 이하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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