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2 - 고경 - 2018년 11월호 Vol.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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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서 의상은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이라고 했다. 미세한 먼지 속에
           온 우주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법장도 ‘다재기중多在己中’이라고 했다. 하
           나의 존재 속에는 보이지 않는 무수한 연緣들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

           연들은 라깡Lacan의 표현처럼 ‘무덤처럼 조용히 침묵’하고 있지만 그와 같

           은 침묵과 드러나지 않음으로 인해 오히려 온전히 존재할 수 있다.
             주의할 것은 홍시로 대표되는 특별한 존재만이 전체를 자기 속에 함축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특별한 유일자 속에서 모든 것이 나왔

           고, 유일자가 세상의 근원이라는 오류에 빠지게 된다. 제법무애도리의 첫

           번째 문은 이문상입, 서로 다른 문으로 들어가기다. 따라서 무수히 많은 것
           들을 내 속에 함축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나 스스로도 무수히 많은 것들 속
           에 들어간다.

             한 알의 홍시가 영글 때 거름과 강아지 똥과 지난 가을에 떨어진 낙엽은

           드러나지 않고 숨죽이며 홍시에 의탁해 있다. 반대로 홍시가 떨어져 썩고,
           두엄 덩어리가 되어 냄새를 풍길 때 먹음직스러운 홍시는 소리 없이 조용
           히 숨는다. 이렇게 보면 모든 존재는 내 속에 모두를 포괄하는 동시에 나

           역시 모든 것들 속에 비밀스럽게 들어가 있다. 그래서 나는 네 속으로 들

           어가 숨고, 너는 내 속으로 들어와 숨는다. 여기서 ‘내 속에 너 있다’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나와 너는 본체의 관점에서 보면 두 몸이 아닌 상즉相
           卽이 되고, 작용의 측면에서 보면 나는 너 속으로, 너는 나 속으로 드나드

           는 상입相入이 된다.

             유력과 무력의 조화관계는 존재의 원리를 설명하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
           는다. 이 원리는 현실 속에서도 유용한 교훈이 된다. 사람들은 늘 자기주
           장을 관철하기 위해 소리치며 대립한다. 그래서 수많은 주의와 주장이 난

           무하고, 서로 자기가 옳다며 대립하고 충돌한다. 그러나 모두가 자기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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