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1 - 고경 - 2018년 11월호 Vol.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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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같이 수많은 인연들이 모두 홍시에 주렁주렁 달라붙어서 자신을 드러
            낸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그것은 홍시가 아니라 두엄 덩어리가 되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무수히 많은 다多는 어떻게 존재하는가? 비결은 자신을 드러

            내지 않고 하나의 인에 의탁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무
            수히 많은 연은 자기 자신을 고집하지 않고 자신의 모습을 완전히 내려놓
            고 뒤로 숨어야 한다. 무수한 연들은 서로 다투며 전면으로 드러나겠다고

            싸우지 않고 오로지 인因 하나만 앞세우고 나머지는 조용히 뒤로 빠져 있

            다. 이것이 ‘많음이 하나에 의지한다’는 ‘다의어일多依於一’에 담긴 의미다.
            무수한 연들이 모여서 달콤한 홍시 한 알을 익게 했음으로 ‘많음이 곧 무력
            [多是無力]’이라는 의미가 된다. 무수한 연들은 자기를 고집하지 않고, 전면

            에 나서지 않고 하나를 통해서 비로소 존재한다.



              전체는 하나에·하나는 전체에 의지하고



              셋째, 이렇게 보면 우리가 보는 하나는 무수히 많은 다를 숨기고 있다.

            법장은 하나의 사물은 “언제나 여럿을 자기 속에 온전하게 두고[多在己中],
            동시에 자기를 여럿 속에 숨겨 두지만 서로 장애가 없다[同時無碍].”고 했다.
            존재는 한 알의 홍시처럼 개별적 개체로 눈앞에 드러나 있다. 하지만 그 한

            알의 홍시는 자신을 있게 해 준 무수한 조건을 저버리지 않는다. 자신이 있

            기까지 힘을 보태고, 조건이 되어준 무수한 연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자기
            속에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인과 연의 관계는 개별적 사물에 국한되지 않고 우주적 관계

            로 확장된다. 한 알의 홍시가 익기까지 온 우주가 참여하기 때문이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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