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0 - 고경 - 2018년 11월호 Vol. 67
P. 80
하지 않는 무력이 되면 홍시도 땡감도 없는 오류가 생긴다.
법장은 『화엄경탐현기』에서 유력과 무력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설
명한다. 즉 “하나가 여럿을 지닐 수 있으니[一能持多], 하나가 유력이므로 여
럿을 포섭할 수 있고[有力能攝多], 여럿이 하나에 의지하니[多依於一] 여럿이
무력이므로[多是無力] 하나에 숨어들어간다[潛入一].”는 것이다. 이 짧은 구
절에는 존재의 역용에 대한 깊은 의미들이 담겨 있다.
첫째, 하나가 여럿을 포함하고 지닐 수 있다[一能持多]는 것이다. 눈앞에
있는 한 알[一]의 홍시는 존재의 주체가 되는 인因이다. 그런데 그 한 알의
홍시는 제 혼자 완성된 것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조건인 연緣들의 도움으
로 존재한다. 그래서 한 알의 홍시는 수많은 존재들을 자기 속에 모두 함
축하고 있다. 바람, 빗물, 햇살, 토양의 자양분, 벌과 나비 등 수많은 조건
들이 동참하여 한 알의 홍시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눈앞에 있는 하나[一]의 존재는 하나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무수
한 것들[多]을 포함하고 있다. 그런 함축관계는 생태적 관계를 넘어 온 우
주로 확장된다. 하나의 현상은 수많은 것들에 의지해 있기 때문이다. 하나
는 단지 개별자로서의 하나가 아니라 하나를 있게 해준 일체를 대표하는
하나이며, 일체를 자기 속에 함축하고 있는 하나이다. 이렇게 하나의 인이
유력으로 작용할 때 그 힘은 일체 모든 것을 포섭하고 움켜쥐고 있는 셈
이다.
둘째, 많음[多]이 하나에 의지해 있을 수 있는 것은 많음이 자신의 힘을
숨기기 때문이다. 무수히 많은 연緣들은 자신의 모습[相]이나 힘[力]을 드러
내지 않고 한 알의 홍시에 의지해 자신을 드러낸다. 한 알의 홍시가 익기
까지는 봄날 떨어진 낙엽, 지나가던 강아지가 싼 똥, 땅 속의 자양분 등 무
수한 인연들이 동참하고, 그것들의 복합적 작용에 의해 탄생했다. 만약 그
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