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3 - 고경 - 2018년 11월호 Vol.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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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내면 조화는 무너지고 대립과 갈등만 존재한다. 어느 한쪽은 반드시 무
력無力이 되어 자기 소리를 양보해야만 타협이 되고 조화의 길이 열린다.
‘하나’와 ‘많음’이 서로 포섭하려면 한쪽은 유력이고 한쪽은 무력이 되어
야 한다. 다 같이 자신을 드러내는 유력이 되면 수많은 주의주장들이 뒤엉
켜 소음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어떤 주장이 합당하면 그 주장이 전면에 드
러나는 유력이 되고, 다른 주장은 숨어주는 무력이 되어야 한다. 그 때 비
로소 하나의 의견은 전체를 함축하는 또렷하고 힘 있는 소리가 된다.
그렇게 탄생한 주장은 다른 모든 견해를 배제한 독단적 주장이 아니다.
그 속에는 무수히 많은 견해들을 함축하고, 수많은 소리를 대표하게 된다.
우리가 뽑은 대표나 지도자들은 자기만의 견해를 갖고 있지만 그 속에는
무수한 유권자의 선택이 숨어 있다. 이런 이치를 수용할 때 하나와 많음이
서로 대립하지 않고 화합할 수 있다. 결국 제법무애도리를 잘 이해할 때 우
리는 현실에서 조화와 공존을 만들어가는 지혜를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서재영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선의 생태철학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국대 연
구교수, 조계종 불학연구소 선임연구원, 불교신문 논설위원 등을 거쳐 현재 불광연구원 책임연구원으로
있다. 저서로 『선의 생태철학』 등이 있으며, 포교 사이트 www.buruna.org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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