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8 - 고경 - 2018년 11월호 Vol.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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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사물이 존재하는데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무슨 이런 비상식
적인 소리를! 우리 주변에 태풍·지진·쓰나미 등이 빈번하게 일어나 며칠
전에도 수천 명이 죽었는데 이것을 자신의 마음속 현상이라니, 도저히 수
긍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다른 사람에게 주먹으로 한 대 맞으면 아프며, 돌
이 떨어져 머리에 맞으면 피가 나고 굉장한 아픔을 경험합니다. 이때 타인
이나 타인의 주먹과 돌은 분명히 자신의 마음 바깥에 존재한다고 생각합니
다. 그렇다면 유식무경이라는 유식의 가르침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유식무경’에 대해서는 몇 가지 입장이 있습니다만, 너무 학술적인 내용
이라 생략하고 필자가 이해한 내용을 중심으로 설명하겠습니다. 우리는 언
제나 ‘나[我]·나의 것[我所]’이라는 생각이 마음속에 늘 잠재해있기 때문에
삶이 고통스럽습니다. 다시 말해 ‘나는 바르게 살고 있다. 내가 옳다.’는 판
단이나 행위에는 언제나 ‘나는~이다’는 생각이 잠재해 있습니다. 특히 ‘나
는~이다’는 주격 표현은 ‘선인가, 악인가, 바르다, 틀렸다’ 등의 가치판단
이 들어갑니다. 내가 옳다는 가치판단이 들어가면 ‘내가 믿는 정의’를 위해
서는 테러나 살인도 주저 없이 저지릅니다. 부모, 부부, 친구, 회사 등의
인간관계에서 싸우게 되는 경우도 언제나 ‘나는 옳다’는 생각이 배후에 있
습니다.
게다가 내 아내, 내 자식, 내 집, 내 몸, 내 회사 등등 ‘나의’라는 소유격
을 무수하게 사용하며 살고 있습니다. 즉 ‘나는~이다’고 생각에 집착하고,
‘나의 것이다’는 소유하는 대상[사람, 물건]에 집착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나’와 ‘나의 것’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제법
무아(諸法無我, 존재하는 모든 것은 ‘나’라고 할 수 있는 실체는 없다)라고 했던 것입
니다. 무아는 ‘나를 없애는 것’·‘나는 본래 없다’·‘나는 존재하지 않는
다’·‘나의 것은 없다’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나’와 ‘나의 것’에 대한 집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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