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6 - 고경 - 2018년 11월호 Vol.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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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했다. 50여 명과 즐겁게 춤추고 노래했다. 그는 “죽은 다음 장례는
아무 의미 없다. 임종 전 지인과 함께 이별 인사를 나누고 싶었다.”고 말한
다. 그는 “지금 살아있는 순간이 감사하게 느껴지며 다가올 죽음에 대해
진지하고 편안하게 생각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인공호흡기 달고 좀 더 살아
1)
서 뭐하나요. 그거 아무런 의미 없다고 봐요.”라고 전했다. 맞는 말이다.
‘생전 장례식’ … 망각과 종말에 앞서가기
최근 일본에서 ‘생전 장례식’을 열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 바 있다. 그냥 어쩔 수 없이 ‘죽어나자빠지는 것’이 아니라 품위 있
게 ‘스스로 죽어가는’ 것에 말이다. 동물은 죽음이 없다. 그냥 죽어나자빠
져 사리질 뿐이다. 사람은 그렇지 않다.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느끼며 생
각하며 죽는 시간과 공간, 그 형식마저도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그
래서 ‘스스로 죽을 수 있다’. 죽음은 삶과 연결된 것이다. 삶의 완성이거나
2)
또 다른 곳으로의 여행이다. 마치 『장자』에서 ‘고기⇄새’ , ‘사람(장자)⇄나
4)
3)
비’ 혹은 ‘사람·닭·탄환·말’ 과 같은 물화物化의 관점처럼, 소풍놀이 하
1) 『중앙일보』(2018.10.10.)[https://news.v.daum.net/v/20181010010053393?d=y](검색일자: 2018.10.10)
2) 『장자·소요유』.
3) 『장자·제물론』.
4) 다음의 문장을 보기로 하자: “자여子輿가 별안간 앓아누웠다. … 자여는 비틀거리며 우물가로 가서 수
면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더니 다시 말했다. “아아, 저 조물주가 나를 이렇게 곱사등이로 만들고 말았
구나.” 자사子祀가 말했다. “자네는 그게 싫은 거로 구만.” 자여가 대답했다. “아닐세. 어째서 싫겠는
가? 점점 내 왼팔이 바뀌어 닭이 된다면 나는 때를 알리겠네. 점점 내 오른팔이 바뀌어 탄환이 된다
면 올빼미라도 쏘아서 구이로 만들겠네. 점점 내 엉덩이가 바뀌어 바퀴가 되고 내 마음이 말[馬]이 된
다면 그것을 타고 가겠네.”(俄而子輿有病,… 跰 而鑑於井,曰, 嗟乎, 夫造物者又將以予為此拘拘也, 子祀曰, 女惡之乎, 曰,
亡,予何惡, 浸假而化予之左臂以為雞,予因以求時夜, 浸假而化予之右臂以為彈,予因以求鴞炙, 浸假而化予之尻以為輪,以神為馬,
予因以乘之)(『莊子·大宗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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