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4 - 고경 - 2018년 11월호 Vol.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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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모두 함께 있는 벗이다. 〜(b)는 순간순간 마음과 몸이 이동해가는
길이다. 복도이든 난간이든 들길이든 산길이든, 누군가와 함께 하는 곳이
면 다 길이다. 의미가 깃든 곳, 그곳이 고향의 길이다.
잘 알려진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
는 인간의 욕심이 얼마나 허무한가를 잘 묘사하고 있다. 아울러 우리가 무
엇을 위해 살며,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가르쳐준다. 소작인 파홈이라는 사
람은 땅값 1000루블을 내고 아침 해뜨기 전에 출발하여 다섯 군데 표시를
하고 해지기 전까지 돌아오면, 그 다섯 군데를 연결한 안쪽의 땅을 모두 준
다는 마을을 찾아간다. 아침 일찍 출발한 파홈은 사방에 펼쳐진 비옥한 땅
을 보고 욕심을 부린 나머지 너무 멀리까지 가게 된다. 아뿔싸! 해지기 전
까지 출발점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원칙 때문에 그는 죽을 힘을 다해 뛰었
다. 그 덕에 그는 해가 떨어지기 전 겨우 출발 지점에 도착했다. 하지만 기
진맥진한 나머지 안타깝게 피를 토하고 숨을 거두고 만다. 결국 죽음의 대
가로 파홈은 많은 땅을 소유하게 되나 그게 무슨 소용이랴! 세상을 떠난 그
에게 정작 필요했던 것은 자신의 관을 묻을 쪼끄만 땅이었다.
『장자·소요유』에 이런 말이 나온다. “초료소어심림鷦鷯巢於深林, 불과일
지不過一枝, 언서음하偃鼠飮河, 불과만복不過滿腹.” “조그마한 뱁새 한 마리가
깊은 숲에서 둥지를 틀 때도 나뭇가지 하나면 족하다. 두더지가 황하의 물
을 마실 때에도 자신의 작은 배하나 채우는 것이면 족하다.” 더 이상은 필
요 없다는 말이다. 파홈이 묻힌 몇 평의 땅, 그의 고향은 바로 그 무덤이
었다.
오늘 마침 우리나라에서 85세의 말기암 환자 김모씨가 존엄사를 선택
하고, 8월 중순 입원한 병원에서 ‘생전生前 장례식’을 열었다는 기사를 보
았다. 지인들에게 부고장을 보내며 “검은 옷 대신 밝고 예쁜 옷을 입고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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