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3 - 고경 - 2018년 11월호 Vol. 67
P. 93

아 논밭 길을 가노라면/이 세상 모두가 내 것인 것을’이란 가사 한 구절
            때문이다. 이 의미를 이제껏 잘 몰랐다. 고향의 논둑 밭둑길을 걸으면 그
            것을 소유한다는 관념이 아니라, 발에 밟히고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존재

            들이 어느새 나와 한 덩어리가 되어 ‘이 세상 모두가 내 것’인양 느껴진다.

            다르게 말하면 ‘내가 온통 이 세상의 것’이 되어 있다. 이렇게 읽어도 되고
            저렇게 읽어도 되는 문맥 속에 나는 서 있는 것이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문맥을 나는 ‘고향’이라 말하고 싶다.

              고향은 근원이다. 고향가기=귀향歸鄕은 근원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하

            이데거가 ‘시인이란 존재의 근원으로 끝없이 귀향하는 자’(Der Beruf des
            Dichters ist die Heimkunft)라고 했듯이, 귀향(歸鄕. Heimkunft)을 하는 자의
            마음은 ‘이 세상 모두가 내 것’인 자이다. 그 근원을 보는 자, 고향을 만나

            는 자는 누구나 ‘길=도道’에 들어선 자이고, 그 자체로 ‘시인’이다.

              톨스토이가 한 세 가지 질문을 떠올린다. 첫째,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
            한 때는 언제인가? 둘째,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셋
            째,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답은 이렇다. 이 세상에서 가

            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현재, 이 순간)이며,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

            람은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이며,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 선행을 베푸는 일’이다. 그렇다면 고향은 어디인가?
            꼭 시골만이 아니다. 자기가 태어난 곳만도 아니다. 톨스토이의 말대로 하

            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다. 그곳은 어디인가? 내가 지금 있는

            ‘이곳’이다. 고향을 만나는 방법은 “〜(a) 벗을 삼아 〜(b)길을 가노라면”이
            다. ‘〜(a)’ 자리에 들어갈 것은, 다름 아닌 지금 나와 함께하고 있는 어떤
            것들이다. 함께 이야기하며 도와주는 사람, 딛고 서 있는 건물이나 흙, 곁

            에 서 있는 나무나 풀들, 재롱을 피우는 동물들, 지저귀는 새, 울어주는 벌



                                                                        91
   88   89   90   91   92   93   94   95   96   97   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