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4 - 고경 - 2018년 12월호 Vol.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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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하는 마음의 불필요성을 말하는 혜능의 말은 여기서 마지막의 네
           번째 단계를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반면에 간심간정을 주장하는 신수의
           말은 처음의 세 단계를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혜능은 반성하지 않는 마음

           을 표준으로 삼기 때문에, 반성하는 마음 자체도 여전히 하나의 망령심이

           라고 간주했을 것이다.
             그런데 반성하는 마음은 단지 기억하는 마음인가? 아니다. 반성하는 마
           음이 과거의 마음이 아닌 바로 현재의 마음을 반성하는 한, 그것은 기억하

           는 마음일 수가 없다. 그렇다면 반성하는 마음은 나중의 기억을 위해 현재

           의 마음을 저장하는 마음인가? 아니다. 현재의 마음의 저장은 반성 없이
           도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소개된 ‘자기를 비추는 등불’
           은 ‘나중의 기억을 위해 현재의 마음을 보면서 저장하는 마음’, 곧 자증분

           을 비유한다. 소승은 ‘마음을 보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주장하면서, ‘칼이

           자기를 자르지 못한다’는 것과 ‘손가락 끝이 손가락 끝을 만질 수 없다’는
           것을 비유로 들었다. 반면에 대승은 ‘대상(상분)을 보는 마음(견분) 자체를 다
           시 보는 마음(자증분)이 있다’는 것을 주장하면서, ‘등불과 태양 등이 자기를

           비춘다’는 것을 비유로 들었다.
             그렇다면, 등불로 비유된 자증분이 반성하는 마음인가? 마음에 오직 3

           부분(상분, 견분, 자증분)이 있다는 진나의 입장에 따르면 그렇다고 답해야 할
           것이다. 반면 마음에 4부분(상분, 견분, 자증분, 증자증분)이 있다는 호법의 입

           장을 따르면, 그렇지 않다고 답할 수 있다. 신수가 말한 마음 관찰이란 지

           나간 마음의 관찰이 아니라 현재의 마음의 관찰이므로, 그것은 기억함이
           아니라 관조함이다. 현재의 마음의 관찰로서의 관조는 노력하여 일어나고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므로, 저절로 일어나는 자증분과 전적으로 동

           일한 것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관조를 자증분이 지닌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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