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7 - 고경 - 2018년 12월호 Vol.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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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관찰하나 거기에 집착하지 않는다.” “제법의 모습”이라는 것은 객관 대
            상인 경境을 말한다. 이는 앞에서 말한 실상에 속한다. 이미 있음도 아니고
            없음도 아니거늘 어떤 모습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집착 않는 마음에 대

            해 의미상으로 ‘모습’을 말해야 하기에 ‘모습 없는 모습’이라고 할 따름이

            다. “성인 등”은 대상을 보는 주관인 마음이며, 무분별지혜를 체득했기에
            성인이라 부른다. 그러나 10지에 오르기 전이지만 진여삼매를 닦는 수행
            자 역시 유와 무의 양변을 비추는 쌍조雙照를 수행하기에 머무른다고 말하

            나, 이미 무無에 집착하지 않고 모습 또한 취하지 않기에, 머무르나 실은

            집착하지 않는 상태에 있다. 성종의 수행자는 비록 범부의 계박[번뇌]에 묶
            여 있으나 - 만약 과거에 훈습된 것이 진실로 마음에 남아 있다면 - 지금
            성인의 마음을 일으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존경하게 만든다.

              ③ “三乘等觀性空而得道也. 性空者, 謂諸法實相也.” 等謂平等, 道謂自

            乘菩提, 所以約人辨者, 恐疑實相之外別有三乘異證, 而不知三乘機器隨熏
                                                   90)
            有差所觀性空無異, 故身子云: “我等同入法性.”  佛讚迦葉同一解脫, 亦如
                   91)
            三獸渡河 河無異水.
              ③ “성문 연각 보살도 성공을 관찰하고 깨달았다. 성공이라는 것은 제

            법의 실상이다.” 등等은 똑같이[평등하다]는 의미다. 도道는 자승[自乘. 스스로
            건너는 수레]의 깨달음을 말한다. 그래서 사람의 관점에서 변별하면, 실상
            밖에 삼승의 다른 깨달음이 별도로 있다고 의심하나, 이는 훈습된 삼승의

            근기가 차이가 있는 것이지 성공을 깨닫는 점에서는 다름이 없다는 것을








            90)  『묘법연화경 권제2·비유품 제3』에 나오는 말이다.
            91)  『아비달마대비바사론 권143』 등 여러 곳에 토끼·말·코끼리가 물을 건너는 비유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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