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5 - 고경 - 2018년 12월호 Vol.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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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다[餘不成起]. 이처럼 하나의 조건이 제 역할을 다 해야 그것을 기반으로
            다른 관계들이 성립하며, 그런 관계가 성립되어야 연기의 원리가 확립
            된다.




              나는 부분이자 우주의 중심


              법장의 설명에 따르면 모든 존재는 색과 공의 관계처럼 맞물려 돌아가

            며, 단 하나의 톱니바퀴[緣]만 빠져도 연기관계는 성립되지 못한다. 법장은

            이를 ‘약궐일연若闕一緣’이라고 표현했다. ‘만약 하나의 조건만 빠져도’ 중중
            무진의 연기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온 우주가 하나로 연
            결되어 있다는 전체성을 강조하는 대목이다. 동시에 전체에서 각각의 개

            체들이 얼마나 절대적인 의미를 지닌 것인지를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법장은 ‘나’라는 개체에 대해 “여럿이 하나를 위하여 이루어지니[多爲一
            成] 여럿은 무체無體이고, 하나가 능히 여럿이 되니[一能作多] 하나는 유체有
            體이다.”라고 했다. 여기서 하나의 연[一緣]은 온 우주의 관계성을 연결 짓

            는 주체적 톱니바퀴 즉 ‘능기能起’가 된다. 그 외에 무수한 톱니바퀴들[多緣]

            은 그 하나의 톱니바퀴에 의해 맞물려 돌아가는 객체, 즉 ‘소기所起’가 된다.
            이렇게 보면 ‘나’라는 개체는 자동차를 움직이는 엔진의 축과 같이 첫 번째
            톱니바퀴가 된다. 나라는 하나의 톱니바퀴, 즉 일연一緣은 단지 하나의 개

            체에 머물지 않고 온 우주를 돌아가게 하는 주인공[能緣]이 되고, 온 우주

            의 존재들은 나에 의해 돌아가는 객체[所緣]가 된다. 나라는 개체는 그저 보
            잘 것 없는 존재가 아니라 우주라는 거대한 톱니바퀴를 지탱하는 중심인
            것이다. 하나의 개체는 부품이지만 하나로서 내가 없으면 우주가 돌아가

            지 않는다. 결국 우주는 나라는 작은 톱니바퀴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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