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8 - 고경 - 2018년 12월호 Vol.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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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자들이 시와 예를 읊으며 무덤을 도굴하는데, 대유大儒가
(망을 보면서 무덤 안에 들어 간 소유小儒가 도굴하는 무덤 속) 아래를 향
해서 말했다. “여보게들! 벌써 동이 트는데 뭘 꾸물대고 있는
가?” (무덤 속에서 도굴에 한창인) 소유小儒가 말한다. “아직 (시신에
입힌) 하의와 저고리를 벗기지 못했는데, 입안에 구슬이 있습니
다. 『시경』에 본래 이런 구절이 있지요. “푸르고 푸른 보리가 무
덤가에 무성하구나. 살아 베풀지 못한 이들이 어찌하여 죽어 구
3)
슬을 물고 있는가!” 시체의 귀밑머리를 잡고 뺨을 누른 채, 소
유小儒가 쇠망치로 툭툭 아래턱을 쳐서, 천천히 시신의 입을 벌
리니, 입속의 구슬을 손상시키지 않고 (무사히 훔칠 수가 있었다). 4)
우스꽝스런 것은 ‘시예詩禮’라는 것이 기껏 도굴할 때에 응용되는 타락한
5)
세상의 ‘양념격’ 인 텍스트로 꼬집고 있다는 점이다. 화려한 무덤 속 시신
에 들어있는 값진 보석들을 노리는 유자儒者들은 상례, 제례를 관장하니 무
덤의 구조를 잘 알고 있는 전문가이다.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 했다. 그들
은 낮에는 낮의 ‘시예’를, 밤에는 밤의 ‘시예’를 읊조릴 수 있었다. 즉 무덤
밖의 시가는 세상을 위한 장송곡이지만, 무덤 속의 시가는 일종의 도굴용
의 레퀴엠(진혼곡)으로 변한다. 타락한 시대에 무덤의 구조를 알고 그 속
의 보물을 파내서 살아가는 무리인 유자 그룹들의 추악함을 폭로해내고
3) 지금의 시경에는 보이지 않는 구절이다. 어쩌면 만들어낸 것일 수도 있다.
4) 『莊子』, 「外物」: 儒以詩禮發冢,大儒臚傳曰, 東方作矣, 事之何若, 小儒曰, 未解裙襦, 口中有珠, 詩固有
之日, 靑靑之麥, 生於陵陂, 生不布施, 死何含珠爲. 接其鬢, 擫其顪, 儒以金椎控其頤, 徐別其頰, 无傷
口中珠.
5) 김용옥, 『논어역주』1, (통나무, 2008),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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