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7 - 고경 - 2018년 12월호 Vol.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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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적 사랑인 ‘겸애兼愛’를 주장한다. 장례를 두고도 유가는 후한 장례 즉
‘후장厚葬’을, 묵가는 검소한 장례 ‘박장薄葬’을 원한다. 묵자의 유가 비판을
보면 이렇다.
유가는 장사葬事를 후하게 지내고 상喪을 오랫동안 행하여 널관
곽棺槨을 겹으로 만들고 옷[衣裳]을 많이 지어 죽은 이 보내기를
이사 가는 듯하며, 3년 동안이나 곡읍哭泣한다. 그리하여 상주
는 부축해 주어야 일어나고 지팡이를 짚어야 걸으며 귀엔 아무
것도 들리지 않고 눈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1)
『맹자』 「등문공장구滕文公章句·상上」에 보면 재미있는 구절이 있다. 묵
가에 속하는 사람[墨者]인 이지夷之가, 유가의 계보에 속하는 맹자를 제자
서벽徐辟을 통해 만나고자 하였다. 그런데 맹자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고
서 만나지 않았다. 다시 이지가 맹자를 만나고자 하니 맹자는 겨우 이에 응
하긴 하였으나, 서벽을 매개로 논의를 주고받는다. 그 요지는 이렇다. 묵
가의 검소한 장례=‘박장薄葬’과 유가의 후한 장례=‘후장厚葬’을 대비하고,
사랑[愛]의 ‘친소후박親疎厚薄’의 차이를 맹자는 인정하나 이지는 인정하지
않는다.
2)
『장자』 「잡편」에 실린 「외물外物」 가운데에 이런 글이 실려 있다. 후한 장
례의 예와 그에 따른 도굴의 풍경을 보여준다.
1) 『墨구閒詁』 「公孟」: 又厚葬久喪, 重爲棺槨, 多爲衣衾, 送死若徙, 三年哭泣, 扶後起, 杖後行, 耳無聞,
目無見, 此足以喪天下.
2) 『孟子』, 「滕文公章句·上」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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