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2 - 고경 - 2019년 1월호 Vol.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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若力也.”‘대상[경境]과 속박[루累]’
             “중생을 교화하러 가는 것을 방편이라 한다.”에서 ‘적適’은 가는 것[왕往]
           이다. 보살은 삶과 죽음에 뛰어들어 중생을 가르쳐 성공을 깨닫게 한다. 이

           것이 선교방편의 지혜다. “교화를 하더라도 ‘대상[진塵]과 속박[루累]’에 물들

           지 않는 것은 지혜(반야)의 공능 때문이다.”에서 범부는 유有[세간]와 관련되
           어 여러 생에 걸쳐 번뇌에 물들고 (사물에) 집착한다. 보살도 유有에 관계하
           지만 모든 사물과 현상이 공함을 알기에 색色(사물)과 소리에 물들거나 집

           착하지 않는다. 실지實智로 공을 깨달음 힘이 바로 이것이다. 그래서 “반야

           의 공능이다.”고 말한다.
             ②  “然則般若之門觀空,  漚和之門涉有”者,  觀空是實智也;  涉有是權智
           也. “涉有未始迷空故, 常處有而不染”下, 覆疏前兩義也. “未始”者, 初未曾

           也. 菩薩涉有, 未曾迷空, 以常知法是空, 故能處在生死. 不生染著, 釋前不

           染塵累般若力也.
             ② “그러한 즉 지혜로 들어가는 방법은 공을 깨닫는 것이며, 방편을 쓰
           는 것은 있음[세간]과 관련이 있다.”에서 공을 체득함은 실지實智를 말한다.

           “세간에 머무르되 미혹되고 허황되지 않으며[성공의 도리를 잊지 않는다], 항상

           세간에 머무르나 물들지 않는다.” 이하는 앞 두 단락의 의미를 다시 설명
           한 것이다. “…라고 말할 수 없다.”는 ‘지금까지 …못하다’ 혹은 ‘아직 …한
           적이 없다’는 의미다. 보살은 유有[세간]에 관계해도 공空을 잘못 파악하지

           않기에 사물이 항상 공함을 안다. 따라서 삶과 죽음에 능히 머무를 수 있

           다. ‘물들고 집착하지 않는다’는 앞의 ‘먼지와 피로[번뇌]에 물들지 않음은
           지혜(반야)의 공능이다’를 해석한 것이다.
             “不厭有而觀空, 故觀空而不證”者, 菩薩涉有, 不生疲厭, 而能觀空也. 對

           前言涉有不迷空, 此言觀空不厭有也. 以觀空不厭有, 所以觀空不即取證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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