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1 - 고경 - 2019년 1월호 Vol.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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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음미하는 부처님 말씀 8



                              나를 위한 「예불문」



                                                       윤제학 | 작가·자유기고가





              “번역은 반역이다.” 번역의 어려움을 표현하는 유명한 경구입니다. 명

            쾌하면서도 강렬한 문장입니다. 그 뜻을 헤아리기 위한 ‘이해’라는 ‘머릿속

            의 번역’은 필요치 않습니다.
              뛰어난 번역은 위대한 반역의 소산입니다. 당연히 그 배후에는 신중하
            고도 현명한 반역자가 있었습니다. 이들이 없었다면 문화의 이동과 확산

            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번역이 반역이라면, 그 반역은 불가피합니다. 위

            험한 만큼 매혹적입니다.
              동북아시아 불교 역사에도 ‘역경 삼장譯經三藏’이라 불린 위대한 반역자
            가 있었습니다. 이들에 의해 산스크리트어나 팔리어로 기록된 부처님의

            가르침이 한문으로 옮겨지지 않았다면 한국의 역사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전개되었을 것입니다. 삼장법사들은 완전한 번역의 근원적 불가능성을 꿰
            뚫어 보았습니다. 대표적인 역경가인 현장(玄奘. 600~664, 당나라) 스님은 5
            종불번五種不飜이라 하여, 다섯 가지의 경우는 번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한 가지만 보자면, 반야般若를 ‘지혜’로 번역하지 않는다는 것

            입니다. 경박하여 높고 귀한 의미를 훼손한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반
            야般若’는 산스크리트어 Prajñā를 소리대로 옮긴 것입니다. 불자들에게 너
            무나도 익숙하고 정겹고 고귀한 말인 ‘보살菩薩’, ‘열반涅槃’도 그렇게 하여

            태어났습니다. 한 글자에 신명을 다한 역경 삼장들의 안목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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