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2 - 고경 - 2019년 1월호 Vol. 69
P. 32

중국으로부터 우리나라로 경전이 전해졌을 때 역경의 중요성은 대두되
           지 않았습니다. 우리 또한 한자를 썼으니까요. 이후 15세기에 들어서 비로
           소 ‘우리말’ 불경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언해 불전’이 그것입니다. 물론

           한문과 우리말의 문법이 다를 뿐 아니라 사대부에 의해 번역이 이루어지

           면서 원전을 잘못 이해한 오류가 있기는 하지만 노력 자체는 높이 사야 할
           것입니다.
             1,600여 년 한국불교 역사에서 한문 경전의 우리말 번역은 현대에 들어

           서 시작됐습니다. 백용성 스님이 1900년대 초에 국한문 혼용체의 불경 번

           역 이후, 한글 전용 우리말 경전은 1964년부터 동국역경원에서 『한글대장
           경』을 펴내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운허 스님의 원력과 그것을 이어받
           아 2000년에 완간하기까지 월운 스님을 중심으로 많은 번역가들이 공력을

           기울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 우리말 경전의 우리말 다움에 대한 문

           제는 또 다른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한국 불자들에게 경전은 이질적인 두 가지 방식으로 수용됩니다. 독송
           은 한문으로 하고, 우리말로 번역된 경전은 (눈으로) 읽습니다. 제대로 이해

           하기 위해서는 해설서에 의지해야 합니다. 한글로 번역된 경전의 상당수

           는 표기만 한글일 뿐입니다. 마땅히 우리말 경전이라면 한문 원전 없이도
           바르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하겠지요. 문장이 우리 말로서 완전할 뿐 아니라
           소리 내어 읽어도 좋을 가락까지 갖추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입니다. 물

           론 이런 경전이 드문 것은 번역자들의 게으름 탓만은 아닙니다. 우리말의

           대부분이 한자어이고, 고도의 개념어를 쉽게 풀어 쓰는 데도 한계가 있습
           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일도 아닙니다. 가령 ‘아라한’을
           일컫는 ‘무학無學’이라는 멋진 말을, ‘배운 것이 없는(이)’ 식으로 풀어 쓴다

           면 어처구니 없는 일이 되겠지요. 그렇다면 어느 수준까지가 우리 말 다운



           30
   27   28   29   30   31   32   33   34   35   36   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