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6 - 고경 - 2019년 2월호 Vol.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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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로 세상 읽기 9
남 탓하지 말라
김군도 | 자유기고가
한 스님이 경청 화상에게 “저는 껍질을 깨뜨리고 나가려는 병아리와 같으니, 부디 화상께서
껍질을 쪼아 깨뜨려 주십시오.” 하고 말했다. 경청 화상이 “과연 그렇게 해서 살 수 있을까?”
하자, 그 스님은 “만약 살지 못하면 화상이 세상의 조롱이 되겠죠.”라고 받아쳤다. 이에 경청
은 “멍청한 놈!”이라며 꾸짖었다.
僧問鏡淸, 學人啐請師啄. 淸云, 還得活也無. 僧云, 若不活遭人怪笑. 淸云, 也是艸裏漢. (『벽암록』 제16칙)
우리나라에 ‘잘되면 제 탓, 못되면 조상 탓’이라는 속담이 있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남 탓’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자신의 허물을 들여
다보는 데 인색한 대신 다른 이의 잘못은 침소봉대하여 드러내려 한다.
이번 공안公案의 제목은 본래 ‘경청의 줄탁[啐啄]’으로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가 ‘줄탁동기啐啄同機’로 이루어지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생각해 본다.
‘줄’은 계란의 배자胚子가 충분히 발육하여 병아리로 태어나기 위해 안에
서 주둥이로 껍질을 쪼아 깨뜨리는 행위의 표현이다. ‘탁’은 암탉이 새끼
의 활동을 직감적으로 깨닫고 알맞은 시간에 밖에서 껍질의 같은 부분을
쪼아 알을 깨고 나오려는 새끼를 돕는 행위를 말한다. 이를 선가禪家에서
는 수행자가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한 때 맞추어 스승이 그 개오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 것을 ‘줄탁동기’라 표현하는 것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스님은 한창 배움에 열중하고 있는 젊은 학인學人이
다. 이 젊은 스님은 자신이 깨닫지 못하면 스승으로서 경청화상이 ‘탁’ 역
할을 제대로 못한 것이 되므로 ‘세상의 조롱거리’가 된다고 엄포를 슬쩍 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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